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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창문

고정옥, 동화작가,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by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6월 22, 2026
in 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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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창문

창문

고정옥, 동화작가,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

몽고메리에서 좋아하는 장소를 뽑는다면 나는 Montgomery Museum of Fine Art
(MMFA)미술관을 첫손가락으로 꼽고 싶다. 잘 조성된 공원과 인공 호수, 여러 조각
작품과 그림도 좋지만, 나는 특히 미술관의 창문들이 좋다. 2층 높이의 큰
유리창으로 보이는 호수의 풍경과 미술품들 사이에 있는 작은 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다.
유리창으로 보는 풍경은 편안하다. 밖의 따가운 햇살과 극성스러운 벌레 소리가
안으로 새어 들어오지만, 유리창을 통과하면서 부드럽고 잔잔한 분위기가 된다. 안과
밖을 나누지만 동시에 안과 밖을 연결하는 창문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보면,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미술 작품처럼 창문에 담긴 풍경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흔히, 유리창을 보이지 않는 벽에 비유하여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경계선이나, 바라보기만 할 뿐 나가서 닿지 못하는 고립된 자아로 본다. 예전에 많이
불렀던 신형원 가수의 <유리벽>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트리지 않네. 모두 다 모른척하네. 보이지 않는 유리벽~’ 사회성 짙은 노래를 자주
불렀던 가수의 유리벽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열림이 아니라, 구분하고 가두는
닫힘이라, 누구든 깨트려 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벽이다.
그런가 하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경계를 넘는 상징이나 연결과 소통,
자유나 희망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는 햇빛이지만 집에 있는 창의
방향과 크기에 따라 가질 수 있는 빛의 양과 질은 공평하지 않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개인이 원하는 자유와 욕망으로 바라보면 떠오르는 영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있다. 두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단칸방의 창문은 북향으로 나 있고 하루에
한 번 햇빛이 든다. 그러나 그마저도 진짜 햇빛이 아니라 남산타워 전망대 유리에
반사된 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벽을 비춘다.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바깥의 불평등과
잔인함을 이미 알아버린 청년의 무력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불안하게 다가오는
영화였다.
미술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함뿍 즐기노라면, 보이지
않는 벽과 수없이 부딪혀가며 터득한 인생에 대한 달관이나 평안에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엔가 투명한 유리창으로 날아와 부딪쳐 떨어진
어린 새의 가녀린 숨결을 생각한다. 그래서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로
시작되는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시를 읊조려 보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유리창, 살아내고자 부단히 펄럭이다가 바람에 날려 밤하늘에 별 하나로 박혀버린
여린 생명과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외롭고 황홀한’ 시인의 슬픔을
헤아려 본다.
6월, 창문 밖에는 초록이 가득하다. 여름 한가운데서 초록은 녹음에 지쳐 시들
것이고 노을이 예쁜 가을이 올 것이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속 변해간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도 변해간다. 창밖을 보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 안의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창문이다.
변화를 천천히 보여주는 창문과 다르게 우리가 날마다 제일 많이 바라보는 창문인
인터넷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자신도 모르게
날마다 누군가가 선택하고 편집한 세상을 바라본다. 대충 훑어보기에도 급급한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스쳐지나가 버린다. 바라보지만
가 닿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다.
“작품을 천천히 보세요.” 미술 작품을 잘 감상하는 법에 대해 아는 화가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한 작품을 오래 보면 처음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색채, 구도처럼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려한 의미도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천천히’가 참 어렵다. 과학과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물리적 시간의 여유는 점점 많아지는 게 분명한데 체감하는 시간적
여유는 왜 자꾸 줄어들까?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창문 밖 세상과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꺼져버리는 통신망 너머의 세상, 이 간격에 우리는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시간을 도둑맞고 싶지 않다면, 한번쯤 창문 밖을
바라보길 바란다. 휴대폰은 꺼두고 말이다.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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