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월가와 반도체 업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AI 서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범용 D램과 낸드까지 공급 부족이 확산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긴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파트너사의 대니얼 로버츠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공급 곡선이 수요를 추월하는 상황을 상상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현재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과거의 전형적인 투자 사이클과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핵심은 AI 시장에서는 컴퓨팅 공급이 늘어날수록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AI 에이전트가 확산하고 처리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사용하게 되고, 이는 다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수요 증가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실제 데이터센터 증설 속도도 가파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데이터센터 용량이 2024년과 비교해 2027년 말에는 두 배, 2030년에는 세 배 이상인 약 125기가와트(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업체 IREN도 내년 6월까지 AI 인프라에 최대 3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문제는 공급 확대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전력 확보를 비롯해 용수와 지역사회의 반대 등 현실적인 제약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AI 수요는 메모리 반도체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HBM 생산이 늘면서 기존 범용 D램 생산능력이 제약받는 가운데 서버용·저전력 D램 수요까지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 저장 수요가 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에도 공급 압박이 번지고 있다.
월가에서는 특히 이번 메모리 호황이 과거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신규 반도체 생산능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27년 중반에서 2028년 이전까지 메모리 시장의 펀더멘털 개선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업체들이 대형 고객과 장기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 사이클과 다른 부분이다.
BofA는 장기계약이 향후 생산능력의 50~70%까지 차지할 가능성이 있어 과거 메모리 시장에서 반복됐던 급격한 가격과 실적 변동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높은 메모리 가격이 업체들의 대규모 증설을 유도하고 있고 중국 업체들도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어 신규 공급이 본격화하면 가격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자체가 둔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AI가 기존 반도체 사이클의 공식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컴퓨팅 공급 확대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I 활용 확대를 통해 다시 더 큰 컴퓨팅·메모리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HBM에서 시작된 AI 반도체 호황이 D램과 낸드까지 번지면서 메모리 시장의 장기 ‘슈퍼사이클’로 이어질지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