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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품에 안은 슬픔

김명희, 독자,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by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9월 8, 2026
in AL/로컬/지역, Uncategorized, 문화/예술, 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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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품에 안은 슬픔

품에 안은 슬픔

김명희, 독자,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

지난 학기 함께 수업을 받았던 L에게서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 너머로 전해진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S선생님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짧은 외마디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날 밤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록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차 올랐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아 보았지만 끝내 울음이 터져나왔다. 내
마음도 이토록 아픈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할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얼마나 깊은 어둠을 견디고 있을까.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방학을 마치고 가을학기 시작 첫 날이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말을 고쳐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괜찮으냐고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할 것
같았고, 힘내라는 말은 너무 쉽게 들릴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사람에게
세상의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교실 문앞에 서서 안을 들려다 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정적조차 너무 무거워, 내가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혹시 그녀의 평정을 깨트릴까 두려웠다. 마주보는 순간 그녀의
슬픔과 나의 무력함을 함께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잠시 서 있다가 마음을 다 잡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말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서로를 안았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품안의 그녀는 너무 가벼웠다.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 앙상하게 여위어 있었다. 그녀는 아직 슬픔을 추스를 겨를조차
없어 보였지만, 우리 앞에 선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결의가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너져 내리는 슬픔에 잠시 빗장을 걸어두고, 자신에게 맡겨진 하루를 견디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떨렸다. 문장 사이 사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이 흘렀다. 애써 다 잡은 목소리 아래로 깊은 비통함이 스며
나왔다. 그 작은 흔들림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수업을
멈추지 않았다. ESL 교실에 모인 사람들이 서툰 영어 때문에 세상과 단절되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겠다는 약속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잃은 바로 그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이 가장 깊은 슬픔에 빠졌을 때도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날을 내어준다. 그러나 그 평범한 하루를 다시 살아내는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어쩌면 그날 그녀가 교실에 선 것은 슬픔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슬픔을 품은 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상실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다하는 조용한 의지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이던 짧은 순간에도
그녀의 슬픔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다. 다만 그녀가 혼자 슬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을 전하고 싶었다.
그날 그녀는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삶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건네는 날에도 우리는
다시 문을 열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슬픔을 잊는 일이 아니었다.
슬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남아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애도인지도 모른다.
다가올 날들 속에서 내 삶이 흔들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슬픔을 품은 채
묵묵히 칠판 앞에 서 있던 그녀처럼, 나 역시 내 자리를 조용히 지켜내고 싶다.

앨라배마 타임즈 | Alabama Korea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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