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까지 제재하는 강력한 ‘경제적 고립 작전’을 발표하면서 이란 내부의 경제 불안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연료와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란 화폐 리알화 가치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새로운 대이란 경제 제재 방침을 발표한 이후 이란 주민들 사이에서 향후 물자 부족과 물가 급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24일 디지털 자산과 군사기술, 금, 항공, 해운 등 5개 분야에서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를 미국 달러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할 수 있는 2차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이란 기업뿐 아니라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압박해 이란 경제를 국제 금융·무역망에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주유소 장사진…쌀·식용유까지 사재기
제재가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이란 곳곳에서는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테헤란과 마슈하드, 케르만 등 주요 도시의 주유소 앞에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잇따라 올라왔다. 일부 주유소는 연료 부족으로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정부가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배급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주민들이 휘발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식료품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테헤란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쌀과 식용유 등이 일시적으로 품절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전쟁 과정에서 정유시설이 피해를 입은 데다 해상 봉쇄 등으로 연료 수입에도 차질이 발생하면서 이란의 에너지 수급 불안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1달러에 200만 리알…화폐가치 사상 최저
경제 불안은 외환시장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지난 24일 미 달러당 200만 리알을 넘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실질적인 구매력이 절반가량 감소한 수준으로 전해졌다.
높은 물가로 가계 부담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기본적인 식료품을 구입하는 데도 빚을 내거나 할부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가 5.4% 역성장하고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성장률 급락과 초고물가, 통화가치 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 시위도 확산…경제 불만이 반정부 시위로 번질까
이란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경제위기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미 일부 산업지역에서는 임금 체불과 해고, 생활고 등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나타나고 있다.
이란 반관영 ILNA통신에 따르면 남부 아살루예에서는 지난 24일 해상 석유·가스 분야 노동자들이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하루 전 서부 샤데간의 제철단지에서도 해고 노동자 100여 명이 항의에 나섰다.
이란에서 경제 문제가 대규모 정치적 시위로 발전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휘발유 가격 인상과 리알화 가치 폭락 등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바 있다.
때문에 이란 정부도 민생 불안이 정치적 소요로 확대될 가능성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아흐마드 레자 라단 이란 경찰청장은 최근 외부 세력이 민생과 휘발유 가격, 실업 등 경제 문제를 이용해 내부 소요를 일으키려 한다고 주장하며 소셜미디어 감시 강화와 바시지 민병대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미국의 제재가 이란의 대외 거래를 얼마나 실제로 차단할지, 그리고 경제적 압박이 이란 내부의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초고물가와 통화가치 폭락, 생필품 부족 우려에 노동자 시위까지 겹치면서 이란 정권이 직면한 내부 압박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