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닮은 사람
고정옥, 동화작가,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
예쁘게 물들어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다가 꽃길에 대해 생각한다.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며 걷던 아름다운 꽃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은 코스모스
길이다.
코스모스의 원산지는 멕시코라는데, 한국에서 꽃 이름으로 영어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을 보면 코스모스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보다. 그 짧은 기간
안에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될 정도로 널리 퍼진 걸 보면 생명력이 참 강한
꽃이다. 코스모스(Cosmos)라는 꽃 이름은 질서, 조화,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잎이 중심을 둘러싸고 균형 있게 피어 있는
모습이 마치 질서 정연한 우주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식물사전에 나오지만,
나는 수많은 별들처럼 서로 다른 크기와 빛깔로 조화롭게 피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덧붙인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가장 먼저 연습 삼아 만든 꽃이라 서툴러서 꽃도 잎도
가냘프다는 전설이 있는 걸 보면, 세상사람 눈에 이보다 여려 보이는 꽃은 없는가
보다.
들이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하늘거리며 은은한 향기를 선물하는 꽃! 한국
사람이라면 코스모스 길에 남겨둔 추억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지 않을까?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 길을 따라 학교에 다닌 기억 때문인지, 코스모스를 보면 마음이
괜스레 몽글거리며 설렌다. 마치 코스모스가 마음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어느새 불어오는 소슬바람이 코스모스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에게로
나를 이끈다.
주홍빛 저녁노을 아래서 분홍 코스모스 하나를 내 머리에 꽂아주던 사람,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노래를 함께 부르며 걸었던 사람, 코스모스 꽃잎을 곱게
말려 코팅해서 편지와 함께 보내준 사람… 복 많게도 나에겐 코스모스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닮은 내 친구, 미순이도 있다.
나처럼 코스모스 핀 가을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닌 고향 친구지만, 미순이를 처음
만난 것은 첫 직장에 들어가서다. 나보다 입사가 조금 빨랐던 친구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큰 편으로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기보다 늘 중심이 분명한 깃대처럼
꼿꼿해 보였다. 맑고 힘 있는 눈빛으로 이치에 맞는 말만 또박또박하는 사람 같아서
함부로 말 걸기가 왠지 조심스러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미순이는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떠났고, 나 또한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여러 도시를 떠돌아서 옛
동료들과는 소식이 끊어졌다. 그렇게 서로를 못 본 지 1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의 학부모참관수업에 참석하여 교실 복도에 서 있을
때였다. 누군가 다가오더니, 내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불렀다. 웃는 얼굴에 반가움이
그득한데, 나는 그녀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도시로 이사한 지 겨우 3달쯤 된
때라, 이 낯선 도시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했다. ‘어디서 만나
사람이지… 이름을 저렇게 부르는 걸 보면 꽤 친했던 거 같은데…’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삐거덕거렸다. 그때 친구가 먼저 “내 미순이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 이름과 함께 친구의 옛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같은
얼굴인데 같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네에서 5년을 이웃으로 살았다. 아이들이 한참 커갈 때라 서로가
바빴지만, 함께 산책과 운동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를 깊이 알아갈수록
예전에 보았던 단단한 깃대가 아니라, 코스모스처럼 여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순이는 코스모스를 참 좋아한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길을 언니, 오빠, 동생들과
거닐었던 추억 때문이기도 하고, 키 크고 여리여리한 몸매와 강인함을 지닌 내면이
코스모스 꽃을 닮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미순이는
코스모스를 닮았다.
친구들이 힘들 때, 언제나 먼저 달려가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꽃길만 걷자’며
응원해주는 친구, 나도 그 옆에서 함께 어우러져 더 예쁜 코스모스가 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흔들리면서 영원한 코스모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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