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일식 뷔페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식탁 위로는 여러
종류의 음식과 그동안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오갔다. 일과 생활에 쫓기다 보면 보고 싶은
마음에도 약속을 미루게 되고, 그렇게 미뤄 둔 시간은 어느새 몇 달이 된다. 그러다가 어렵게 만나면
헤어져 있던 시간을 한꺼번에 메우려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
내다 잠시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 일. 특별할 것 없는 그 평범함 속에서 모두가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나는 이미 배가 불렀다. 더 먹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접시 위에 남은
초밥 몇 점이 자꾸 나의 시선을 잡았다. ‘이왕 돈을 냈으니 몇 점은 더 먹어야지’. 몸은 그만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마음은 아직 계산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뷔페에 낸 돈만큼은 먹어야 손해가
아니라는 평소와 다른 셈법이 발동한다. 배를 채우는 일보다 본전을 채우는 일이 더 중요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초밥 몇 개를 더 집었다.
식당을 나설 때쯤 나는 허리벨트의 단추를 풀고 묵직해진 배를 가디건으로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은 목젖까지 차오르고 걸음은 여름날 아스팔트 위의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그래도 지불한 돈만큼은 충분히 먹었다는 생각에 은근한 만족감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식당 출구를 향했다.
식당 문을 나서자 길가에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발치에는
비어 있는 투명한 동전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을 바쁘게 지나갔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고, 누군가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노인은
가끔 고개를 들어 지나간 시간의 상흔이 침전된 표정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누구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 역시 멈추지 않았다. 노인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비어 있는 동전통도 보았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도 보았다. 다만 그 광경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가족들과의 저녁은 즐거웠고, 날씨도 좋았다. 굳이 불편한 생각을 끌어안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인의 모습은 좀처럼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허리벨트를 풀어가며 배가 부른데도 본전을 생각하면서 초밥을 더
집었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한쪽에서는 더 채우려고 애쓰고, 다 른 한쪽에서는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사람. 그 두 장면은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노인은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앞을
지나갔을 테고, 빈 동전통은 한동안 그대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뒤의 일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내가 지나쳤다는 사실뿐이다. 그날 먹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또렷하지 않다. 하지만 길가에 앉아 있던 노인의 모습은 좀처럼
희미해지지 않는다. 내가 먹은 초밥 몇 점이 노인의 하루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우연히 한 공간을 지나쳤을 뿐인데….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걸음을 늦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어려움을 볼 때마다 반드시
무언가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친절을 의무로 만들면 마음은 또 다른 계산을 시작할
것이다. 다만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얼굴과 마주했을때, 그 사람이 내 하루와
무관하다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시간이 흐르면 하루의 장면들은 어느 날의 기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어떤
순간은 오히려 사소하기 때문에 오래동안 남아있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저 지나쳐 버렸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은 순간처럼.
지금, 내 차 트렁크 한쪽에는 에너지바와 두유 몇 팩이 자리를 잡고 있다. 빈 동전통처럼
초라하지 않지만 배를 그득 채우지도 않을 만큼의 양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선뜻 손을 내밀기에도 부족하지 않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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