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가 구글·애플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요청에 대해 이르면 이번 주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세금으로 구축한 국가 핵심 자산을 아무 조건 없이 넘길 경우 안보·경제·데이터 주권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대 5000 고정밀 지도, ‘안보 집합체’
26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국토지리정보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를 열고 1대 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논의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가 보유한 1대 5000 축척 지도는 주요국이 일반적으로 보유한 1대 2만5000 축척보다 훨씬 정밀하다. 군사·보안시설, 세부 지형 정보 등이 포함돼 있어 ‘안보 집합체’로 평가된다.
정부는 2007년과 2016년에도 Google의 반출 요청을 안보상 이유로 불허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일부 조건(보안시설 가림 처리, 좌표 표시 제한 등)을 제시하며 결정을 유보했고, 구글은 이달 보완서류를 제출했다. Apple 역시 반출 승인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차별 아닌 역차별” 논란
미국 측은 자국 기업 차별을 문제 삼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국내 기업 역차별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카카오·티맵모빌리티 등 국내 사업자들은 고정밀 지도를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내 법인세를 납부하고, 보안 규정에 따라 물리적으로 통제된 보호구역에서 지도 가공 작업을 수행한다.
반면 구글코리아는 2024년 매출 3869억 원에 대해 172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한 것으로 공시됐다. 유튜브·구글플레이 매출까지 포함하면 실제 국내 매출은 수조 원대로 추정되지만, 구체적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3902억 원, 1590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한 것과 대비된다.
정부가 반출 조건으로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두면 법인 등록·회계 보고 의무가 발생해 과세 투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안보·표기 논란
보안 우려도 여전하다. 올해 1월 애플 지도에서는 청와대 주요 시설 위성 이미지가 가림 처리 없이 노출됐고, 구글 지도 역시 일부 보안시설이 공개 상태로 유지된 사례가 확인됐다.
또 지난해 8월에는 구글 날씨 서비스 지도에서 독도를 ‘다케시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논란이 발생했다. 당시 구글코리아 측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중립적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명했다.
AI 시대, 데이터 주권 시험대
전문가들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단순한 지도 정보가 아니라 자율주행·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학습 데이터라고 강조한다.
김주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고정밀 지도는 구글 같은 글로벌 AI 기업에 고품질 학습 데이터가 된다”며 “한국의 공간·산업 정보가 AI 모델에 학습될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고정밀 지도 반출은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 이슈로 확전된 상황에서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안보, 산업 경쟁력, 데이터 주권, 통상 압박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번 사안은 단순한 지도 데이터 문제가 아닌 국가 전략 자산의 향방을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