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이은 물가 고공행진으로 9년만에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2%대로 사실상 굳어졌다. 이에 정부가 물가 관리에 실패했으며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하반기 물가 상승은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전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정부에만 화살을 돌릴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이달부터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의 전환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소비진작 정책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소비진작책으로 인해 물가 상승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가하면,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위축된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긍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반박이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97(2015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했다. 이는 2012년 1월(3.3%) 이후 9년9개월만에 기록한 최대 상승폭이자 같은 해 2월(3.0%) 이후 9년8개월만의 3%대 상승이다.
정부는 지난달 물가 상승은 지난해 10월 시행했던 통신비 지원이 사라진 데 따른 휴대전화료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신요금 지원 기저효과를 뺀 물가상승률도 2.5~2.6% 정도다. 앞서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2%대 상승을 기록한 데 이은 지속적인 오름세다.
여기에 남은 2개월 역시 상방압력이 여전하다. 국제 유가 상승과 더불어 위드코로나에 따른 소비 회복, 김장시기에 따른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등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여지가 있다.
올 10월까지의 누계 상승률은 2.2%로, 당초 정부가 설정한 연간 물가 관리 목표(1.8%)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국은행의 목표치도 2.0% 였는데 이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통계청은 남은 두 달 동안 현재의 상승폭에서 ±0.1%p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며, 한은 역시 지난 8월 전망인 2.1%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당초 2%대 상승이 시작되던 지난 4~6월까지만 해도 “물가 상승은 일시적 흐름”이라고 진단하며 하반기에는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물론 하반기의 물가 상승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 공업제품 가격의 상승이 크게 작용한 만큼, 정부의 대응이 쉽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한 채 상반기의 상승 흐름을 안이하게 바라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반기에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정부가 정책적인 오판과 함께 다소 안이하게 대처했고, 결국 하반기 들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달 ‘위드코로나’와 함께 시행하는 소비진작책은 물가 상승을 부추길 여지가 있다. 2300억원의 예산이 남아있는 소비 쿠폰 발행 재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코리아세일페스티벌'(코세페)은 물론이고, ‘물가 안정 대책’으로 내놓은 유류세 인하 역시 외출·여행 수요 증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을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하기는 어려웠다”면서도 “그러나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이나 소비 쿠폰 발행 등의 ‘유동성 공급’과 유사한 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물가 부담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하는 모양새가 계속된다”면서 “경기 부양의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물가 상승 압력의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하반기 물가 상승을 ‘정부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의 물가 상승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상반기 상승세를 ‘일시적 흐름’으로 진단한 것 역시 우리만 특별히 다른 판단을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가 시행하는 경기부양책에 대해서도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봤다. 하 교수는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현 상황에서 소비진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물가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진작책에 따른 물가 상승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체 물가를 좌우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그간 코로나로 인해 소비가 워낙 침체돼 있었던만큼, 그것을 끌어올린다는 측면에서 마땅히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당장 오르는 물가를 정부가 억지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서민들의 체감물가 완화와 장바구니 부담을 더는 차원에서 쿠폰 형태의 지원금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남은 2개월 간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일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유가 등 에너지가격 상승과 공급차질 등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유류세와 LNG 할당관세 한시인하, 농축수산물 수급관리, 공공요금 동결 등 범부처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