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각본가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톰 스토파드가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9일 스토파드의 소속사 유나이티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는 작품을 통해 재능과 인간미, 재치와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영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남겼다.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 즐린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파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가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어머니가 영국 장교와 재혼하면서 8살 때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때 이름을 톰 스토파드로 바꾸었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고 17세에 지역 신문사 기자로 글쓰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런던에서 잡지 평론가로 활동했고, 1960년대부터 라디오·TV 희곡을 집필하면서 점차 주목받았다. 1966년 셰익스피어 ‘햄릿’을 조연 시점에서 재해석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가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스토파드는 냉전 시기 동유럽과 소련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쏟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지식인으로도 활동했다. 후기작 ‘레오폴트슈타트’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연극 외에도 영화·라디오·TV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체코 반체제 작가 바츨라프 하벨의 희곡들을 영어로 번역한 것도 그의 대표 업적 중 하나다.
그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트라베스티스’, ‘더 리얼 씽’ 등으로 토니상 최고 연극상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1999년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스토파드는 세 번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배우 에드 스토파드가 그의 아들이다. 전기 작가 허미온 리는 “스토파드의 작품은 언어, 지식, 감정이 어우러진 독특한 힘을 지닌다”며 “지적이라는 평가 뒤에는 상실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