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심하고 실업률이 낮을 때, 십중팔구는 2년 안에 경기 침체가 찾아왔다.”(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12일 CNN 인터뷰)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지난 13일 국내외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물가는 치솟는데 불경기가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번지면서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날 기재부는 긴급 거시경제금융 점검회의를 열고 같은 날 초래된 금융 불안과 관련해 “필요 시 즉시 시장안정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회의를 주재한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미국의 새 물가 지표로 인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정점론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대됐다”며 “이에 따라 주요국의 금리 인상 폭과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는 점이 국내외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당시 우리 금융 시장은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가장 높은 8.6%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일제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코스피는 올들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블랙 먼데이’를 맞이했다. 달러·원 환율은 1284원에 마감해 종전 연고점인 1291.5원에 가까워졌고, 국채 금리는 단기물을 중심으로 크게 올랐는데 그 기세는 오전 모든 연물에서 연고점을 다시 쓸 정도였다.
기재부가 거시경제금융 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은 이 같은 금융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일종의 ‘구두 개입’ 목적이 있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물가가 급등하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더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연준이 정책금리를 한 번에 두 단계(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에 나서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는데, 이번 물가 발표 뒤에는 보다 빠른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연준의 질주는 이번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이달만 아니라 7월과 9월, 11월, 12월에도 금리 인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그간 경기를 부양해 왔던 유동성, 즉 돈줄이 끊기는 셈이어서 경기 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물가의 경우 급격한 임금 상승에 의해 나날이 가속 페달을 밟을 위험이 있다. 물가가 불붙으면 소비자 지갑이 닫히며 경기 침체는 악화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지정학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물가 여건 개선은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저명한 미 경제학자 49명 중 약 70%는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내년 경기 침체를 선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NBER는 경기 침체의 시작과 종료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기관이다.
물가가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1970년대의 악명 높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FT와 함께 설문조사를 설계한 조나단 라이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그보다는 미약한 수준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를 예상했다.

미국이 침체에 접어들면 한국 경제는 그림자처럼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시장의 현 기대보다 물가는 더 오르고, 경기는 더 빨리 하강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5월 물가 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면서 13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물가 상황은 내년 초까지도 완전히 나아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래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달 10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간 내림세를 기록했다. 무역 적자도 2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경제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며 “미 금리가 큰 폭으로 높아지면서 환율이 뛰는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수출이 타격을 받는데, 그러면 우리도 금리를 높여야 하고 그에 따른 부동산 거품(버블) 붕괴, 가계부채 부실화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자신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최근 수출액은 인플레로 인해 올랐지만 수출량은 5년간 늘지 않았고,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취약하다는 신호”라면서 “임금 인상 압력을 비롯해 우리 경제에 불안정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기에 경제 위기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서 새 정부가 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기재부 인사를 비롯한 정책 당국의 진용을 조속히 완성한 이후 신속한 대응 정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침체 상태였다”며 “(하반기) 지표를 봐야겠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있거나, 이미 와 있는 상태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