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중국의 봉쇄령,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수출금지 조치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전 산업군으로 확산하고 있다.
주요 수입국에서 거래가 막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내 공급이 줄면서 에너지값 급등에 따른 무역수지는 두 달째 적자를 이어갔고, 식품분야의 공급망 차질은 서민가계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취임을 나흘 앞둔 윤석열 정부가 이 같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된다.
◇산업계, 석유·화학, 배터리·반도체업계 ‘비명’
석유화학 업계는 나프타 가격 급등에 그야말로 비상이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는 합성수지와 합성고무, 합성섬유 제품을 만드는 기초 원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나프타 가격도 덩달아 폭등했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 가격정보에 따르면 올 초 톤당 700달러 초반이던 국제 나프타 가격은 지난 3월 중순 톤당 1000달러를 돌파했고, 현재는 톤당 940달러 수준을 등락 중이다.
나프타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 업계 원가 부담으로 직결된다. 국내 수출 전략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배터리도 전전긍긍이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4월까지 10개월간 5배 이상 폭등했다. 반도체 업계도 속이 편치 않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3개월 치 재고분을 비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올 6월을 기점으로 생산 계획을 축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값 급등에 2개월 연속 무역적자 ‘현실로’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4월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인한 세계적 에너지·원자재가격 급등으로 무역수지는 또 적자를 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2년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76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했다. 역대 4월 중 최고치다. 기존 4월 최고 실적은 2021년 4월 기록한 512억달러였다.
올 들어 1~4월 누계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2000억달러도 돌파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출 증가에도 에너지·원자재 수입이 늘면서 무역수지는 3월에 이어 또 적자를 기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가격 급등 영향이다.
지난달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6% 증가한 603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6월 이후 수출을 넘는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무역수지는 26억6000만달러 적자를 냈다.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수입액은 148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기(77억2000만달러)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농산물 수입액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3월(24억5000만달러)에 근접한 24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발 팜유 수출금지 조치…’라면·과자 등’ 식품가격 또 인상?
최근 팜유 수출 1위국인 인도네시아가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면서 국내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팜유는 라면‧과자 등을 제조하는 주원료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수급불안에 따른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 말레이시아산 팜유를 주로 수입하는데 우려스러운 점은 비축 물량을 다 소진했을 때 인도네시아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위기 요인은 남아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인도네시아산 공급물량이 줄면서 말레이시아산 팜유 가격이 덩달아 뛴다는 것도 큰 문제다.
자산분석사이트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산 팜유 선물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톤당 7014링깃(204만1424원)으로 뛰어올랐다. 지난달 초 5500링깃(160만원) 수준에서 한 달 동안 27% 상승했다.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4200링깃 수준이었고, 2년 전에는 2000링깃 초반에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2년 만에 3.5배가 오른 셈이다.
◇식량까지 덮친 글로벌 공급망 차질…대책 마련 분주한 정부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확산하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4일 포스코인터내셔널을 방문한 자리에서 “식량안보는 국민들의 일상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향후 수입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엄중한 상황임을 시사했다.
새 정부의 문제 인식도 다르지 않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에 ‘산업경쟁력과 공급망을 강화하는 신산업통상전략’ 과제를 담았다.
윤석열 정부는 상시화된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공급망 위기경보시스템 및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소재부품장비특별법 개정을 통한 산업공급망안정품목 선정, 공급망 분석 및 EWS(조기경보시스템) 운영, 산업공급망안정사업 지원 등이 핵심이다.
여기에 수출통제(대외무역법), 기술 유출방지(산업기술보호법),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외국인투자촉진법) 등 3대 기술안보 정책을 재정비하고 공급망 안정을 위한 유턴·외투유치를 확대한다. 이를 통해 핵심광물·원자재 공급국, 반도체 등 첨단기술 보유국과 공급망 연대 및 협력 파트너십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