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만에 북미 지역 출장길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박11일의 일정을 마치고 24일 오후 귀국했다. 미국 동·서부를 횡단한 이번 출장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의 ‘미래 성장사업’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미국 백악관 인사 및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유망 산업에 대한 협력 의지를 다졌다.
이 부회장이 지난 14일 출국 후 처음으로 방문한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계에선 캐나다 토론토 인공지능(AI)연구센터를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AI는 이 부회장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육성 중인 분야다. 지난 8월 향후 3년 동안 240조원의 신규 투자 발표 당시에도 반도체·바이오와 함께 AI가 언급된 바 있다.
이후 이 부회장은 16일 매사추세츠주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이사회 의장을 만났다. 이날 이 부회장과 아페얀 의장은 최근 진행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조와 향후 추가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모더나 백신의 국내 도입과 백신 위탁 생산을 위한 기술 도입 문제 등이 거론된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에는 뉴저지주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와 만나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7조9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5G 이동통신 솔루션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후 비욘드(Beyond) 5G, 6G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차세대 통신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바이오와 차세대 이동통신은 이 부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집중 육성하기로 한 삼성의 ‘미래 성장사업’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글로벌 바이오 업체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4차 산업혁명에서의 핵심 인프라인 차세대 통신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바이오·이동통신 일정 이후 워싱턴으로 이동한 이 부회장은 18~19일 워싱턴에서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잇따라 면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반도체 산업에 대한 행정부 및 입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부회장은 워싱턴이 있는 미국 북동부를 떠나 ‘글로벌 IT 혁신의 산실’로 불리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서부로 이동했다. 20일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만나 반도체·모바일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협력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장에 대해 논의했다.
또 아마존을 방문해서는 △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유망산업 전반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두 회사와의 만남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와 관련된 전략을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21~22일에는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잇따라 방문해 AI와 6G 등 차세대 핵심 기술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에는 구글 본사를 방문해 순다르 피차이 CEO 등 경영진을 만나 시스템반도체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자율주행, 플랫폼 혁명 등 차세대 소프트웨어·정보통신기술(ICT) 혁신 분야의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구글이 자체 설계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올해 연말 생산 예정인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 6’에 탑재하고 삼성전자에 칩 생산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가운데, 업계에선 이 부회장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양사의 협업 관계가 한층 공고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 일정에서 미국 신규 파운드리 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하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2000억원)를 투입해 신규 공장을 건설할 방침을 정했는데, 최종 입지 선정을 결정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매듭을 지었다.
이번 신규 파운드리 라인은 내년 완공되는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하며 ‘메모리 1위, 시스템반도체 1위’라는 삼성전자의 장기 비전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신성장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버라이즌 등 다양한 사업파트너들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가동하면서 삼성의 변화와 새로운 도약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한다.
11일의 일정 동안 미국 동부와 서부를 횡단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간 후 이날 귀국한 이 부회장은 휴식을 취하고 오는 25일 오전 재판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귀국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은 출장이었다”면서도 “우리 현장의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모습을) 제가 직접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