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 ‘용산 집무실’ 설치 구상이 불발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당선인 본인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위치해 있는 청와대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선 오는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외국정상 등이 경축사절로 방한할 경우 이들을 맞이할 장소가 마땅치 않게 됐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 외국에서 정상급 인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대통령과의 회담은 서울 종로구 소재 청와대 본관에서, 그리고 대통령 주재 만찬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 정상 등에 대한 공식 환영식은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용산구 소재 현 국방부 청사 본관에 대통령 집무실을 차리겠단 계획을 직접 밝히면서 현 청와대는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또 그는 추후 청와대 영빈관을 대체할 건물을 별도로 짓겠단 구상도 함께 공개했다.
윤 당선인의 계획에 따르면 국방부는 최대한 빨리 청사 본관 내 사무실을 모두 비우고 4월 중 리모델링 작업을 마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실의 청사 입주 방침에 따라 국방부는 인근 합동참모본부 건물로 사무실을 옮기고, 합참 내 일부 부서도 영내 국방시설본부 건물로 옮기는 안(案)을 이미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현 정부 청와대는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계획 발표 다음날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합참·청와대 모두 더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게 순리”(박수현 국민소통수석)라며 제동을 걸었고, 그 결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요청한 대통령실 및 국방부 이전을 위한 정부 예비비 편성·집행 안건은 22일 국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윤 당선인 측 또한 “대통령 취임 뒤에도 ‘용산 집무실’이 마련되기 전까진 현재 당선인 집무실이 차려져 있는 종로구 통의동 소재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을 계속 쓰겠다”는 배수진을 친 상황.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의 연쇄 이전문제를 놓고 신·구 정권이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윤 당선인의 ‘통의동 생활’이 실제로 취임 후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운영과 대통령 경호업무의 등의 차질뿐만 아니라, 방한 인사들을 상대로 자칫 ‘외교적 결례’를 빚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총리가 직접 참석해 첫 한일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진 사실을 들어 “당장 대통령 취임식이 문제”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5월 하순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선 벌써부터 종로구 외교부 청사 등이 정상회담장 ‘대체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외교부 청사는 한때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 가운데 하나였던 곳이기도 하다.
또 대통령 주재 오·만찬 등의 행사 장소로는 국방부 인근 국방컨벤션이나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활용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된다. 윤 당선인의 취임 후 임시 거처로 거론돼왔던 한남동 소재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이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회담 배석자들을 줄이거나 한다면 외교부 청사 등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하진 않겠지만,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