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이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안을 발표한 뒤 미국·일본과 정상외교 또한 본격화하면서 ‘한미일 협력 강화’에 한껏 속도를 내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미 백악관 대변인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여사는 2023년 4월26일 국빈 만찬을 포함한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맞이할 예정”이라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우리 대통령실도 7일 오후 늦게 김은혜 홍보수석을 통해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4월 말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윤 대통령 부부의 미국 방문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작년 9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특히 이번 방미엔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이번 4월 방미에 앞서 이르면 다음주쯤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 외교가에 따르면 한일 양측은 우리 정부의 지난 6일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통해 ‘그간 경색돼왔던 양국관계를 풀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고 판단, 윤 대통령의 방일 문제에 대한 물밑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일본 측에선 이미 윤 대통령이 오는 16~17일쯤 자국을 찾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성사될 경우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일본 측의 지원책 등이 제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앞서 6일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해법엔 일부 피해자 측이 요구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측이 그 ‘수용 불가’ 입장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해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외엔 사실상 별다른 상응 조치를 내놓지 않았기에 일부에선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플러스 알파'(+α)가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그리고 지난 12년간 중단됐던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 등 또한 윤 대통령의 주요 방일 의제로 거론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이번 미국 국빈 방문 등과 관련,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및 한미일 협력 강화 의지와 미국의 한미일 협력 의지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 2021년 출범 이후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또한 역내 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한 우리 대법원의 2018년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과 그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이듬해 7월부터 발동된 일본 측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조치 등으로 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악화됐던 탓에 ‘한미일 협력’ 또한 미국이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던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이번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미 정부가 바이든 대통령 명의의 ‘환영’ 성명까지 낸 것도 이 같은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교가에선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도 윤 대통령이 초청돼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한미일 정상회담에 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가 향후 한미일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염두에 두고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했을 걸로 본다”며 “전략적으로 가장 효용이 높은 시기를 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작년 5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일본과의 외교에 주력해왔다.
우리 정부는 작년 말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며 미국과의 정책 동조화를 모색했다. 또 이번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에 앞서선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을 ‘미래 협력 파트너’로 칭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뒤 국내에선 여전히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단 점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의 ‘장밋빛 그림’을 그리는 건 시기상조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일관계 소식통은 올 4월 일본에서 통일지방선거와 중의원(하원) 보궐선거가 치러짐을 들어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결국 국내 여론이 문제”라며 “당분간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한일관계 개선 및 한미일 협력 등을 위한 조치를 순차적으로 취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