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패권 전쟁 속 한국의 ‘줄타기 외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사이에서 상대국에 대한 지나친 호의는 다른 편으로부터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가진 정상 통화에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은 방역에 큰 성과를 냈다”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등의 발언도 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 중 ‘공산당 창당 100주년 축하’ 부분을 강조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중패권 구도 속 미국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이 통화를 한 배경을 놓고도 논란이 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선서 이후 한국과 첫 정상통화를 하며 동맹강화의 뜻을 전하기도 전에, 시 주석이 ‘한중 협력동반자 관계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하며 손을 내밀었고 문 대통령은 이를 맞잡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정부는 미중 택일 압박이 불거질 때마다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강화·복원을 기반으로 한 대중 견제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가 대표적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7일 한국과 일본 외교수장들과 전화통화를 갖고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했다.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민주주의 동맹체인 ‘D-10’과 미국 주도의 안보협의체인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진폭’이 큰 외교 행보는 미중 모두에 ‘윈윈'(Win-win)이라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양측 모두로부터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이전 박근혜 정부 때 상황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서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행사를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지켜보는 장면이 전 세계에 공개되자, 미국 조야에서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이른바 ‘중국 경도’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은 불과 한달만인 10월 중순 워싱턴으로 건너가 한미정상회담을 하면서 동맹에 대한 우려를 씼어내야 했다. 이후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은 한한령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강도높은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미중 사이에서 ‘주도적인 적극 외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외교의 진폭’이 커지면서 국익에 손실을 끼쳤다는 비판이 더 많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같은 행보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관성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용을 감당하고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2017년 사드 사태가 주는 교훈이 있다”며 “사드 배치 후폭풍에 우리가 힘들었던 것은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다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대원칙을 정해 사안별로 문제를 타개해 나가야한다”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가장 중시하며 열린 세계화, 법에 의해 지배받는 다자주의 등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한국이 참여하겠다고 사전에 얘기한 건 정부가 잘한 것”이라며 “우리의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향후 다자주의 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다. 일단 들어가면 참가국들과 함께 N분의 1이 되는 셈이라 중국이 한국만 가지고 보복하기 쉽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