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합당은 공수처가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공수처가 행정부에 소속되고 여러 통제장치도 마련돼 있다고 봤다.
헌재는 28일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 청구 내용 일부는 기각하고, 나머지는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각하했다.
앞서 통합당은 지난해 2월 공수처법이 헌법상 근거없이 초헌법적 국가기관을 설립하고, 일반적으로 삼권분립을 의미하는 권력분립원칙에 반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공수처법에 공수처 소속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행정각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형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수사처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소속되고, 그 관할권의 범위가 전국에 미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유로는 △공수처가 하는 수사와 공소제기·유지는 헌법상 본질적으로 행정에 속하는 사무 △공수처 구성에 대통령의 실질적 인사권 인정 △공수처장이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고 법무장관에게 의안제출을 건의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입법을 통해 도입된 공수처에 대한 통제권이 국회 등 여러 기관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헌재 선고 뒤 회견에서 “공수처에 대한 통제 수단이 없다”며 “조속한 보완입법이나 추가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평등권 침해 주장에 관해선 “고위공직자는 권력형 부정 사건을 범할 가능성이 높고 그 범죄로 인한 부정적 파급효과가 크다”며 고위공직자범죄를 공수처의 수사·기소 대상으로 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통합당은 공수처법이 공수처와 공수처검사의 헌법적 근거나 검찰청 및 검사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규정해 양 기관이 충돌할 경우 국민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헌법이 수사단계에서의 영장신청권자를 검사로 한정한 점도 짚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실제 군검사와 특별검사도 검찰청법상 검사에 해당하지 않지만 영장신청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헌법에 규정된 영장신청권자로서의 검사가 ‘검찰청법상 검사’만 지칭하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수처검사가 변호사 자격을 일정기간 보유한 사람 중 임명하도록 돼 있어 법률전문가 자격도 갖췄다고 봤다.
헌재는 통합당이 검찰의 정치적 종속성을 이유로 별도 수사기관을 설치하며 검찰보다 구조적으로 더 정치적 종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는 조직을 탄생시킨 것이라 비판한 것에도 반박했다.
헌재는 “설령 청구인들이 실제 고위공직자범죄등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표적수사 등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해도, 현재 시점에서 그러한 사유가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구체적 사안이 생겼을 때에야 기본권 침해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혐의를 인지하면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하도록 한 조항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헌재는 이에 공수처법상 이첩요청 사유가 중복수사 등으로 한정돼 있고 이 사유가 “명백히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중복수사 발생시 피의자의 법적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입법 때 ‘공수처장의 이첩요청권한’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전 의원은 이에 대해선 “공수처장 이첩권한은 검찰이 저항할 수 없어 (공수처가) 일방적 우위에 있고, 명확성 기준에 반한다”며 “김진욱 공수처장이 명확한 이첩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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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법사위원인 유상범(가운데), 전주혜 의원(오른쪽). 2021.1.2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
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이 낸 반대의견엔 통합당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부분도 있었다. 통합당은 공수처 구성에 대통령과 국회의장, 교섭단체가 추천한 사람의 영향력이 강력하도록 규정해 정치적 중립성을 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세 재판관은 “공수처장 임명절차에 관련된 추천위원회 구성, 공수처 검사 인사위원회 구성에 각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위원 4명이 포함되도록 규정돼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합헌 판단에도 공수처 위헌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는 건 아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지난해 7월15일부터 시행된 공수처법에 대해 내려진 것이고, 지난해 말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은 아직 심리 중이다. 여기엔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 삭제, 재판·수사 실무경력 없는 변호사를 공수처 검사로 임명하도록 한 것 등 보다 구체적인 권리침해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그 위헌심판도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헌재에서 권력분립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암담한 심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