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정의용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20일 외교부 장관에 내정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에 관한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고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서 3년2개월 간 재직한 정 후보자의 현장 복귀다. 그는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지난해 7월 국가안보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맡아 문 대통령을 뒤에서 도왔다.
문 대통령이 정 후보자를 다시 현장으로 불러낸 것은 그를 통해 미국 측에 남북 대화 및 북미 대화의 추진 과정과 성과, 개선점을 설명하고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계승하도록 설득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새로운 한반도 전략을 수립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성사시킨 성과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 더 구체적 방안을 이루는 대화, 협상을 해나간다면 조금 더 속도 있게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모든 절차가 끝나고 임명이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외교정책이 결실을 맺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의 기용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모두 ‘남북 해결사’들이 맞게 됐다. 정 후보자에 이어 국가안보실장을 맡은 서훈 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임종석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모두 전·현정부에서 남북문제에 핵심 열할을 했거나 남북문제에 정통한 인물들로 꼽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주요국의 행정부 변화가 있었다”며 “여기에 맞춰서 외교라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외교 전열을 재정비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이번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까지 교체되면서 문재인 정부 ‘원년 멤버’는 한명도 남지 않게 된다.
친문 의원들의 연이은 입각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문화체육부장관에 각각 내정된 권칠승 의원과 황희 의원은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친문 핵심인사들로 꼽힌다. 두 사람은 친문 인사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멤버이기도 하다.
부엉이 모임의 좌장 역할을 맡았던 전해철 의원도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고, 법무부 장관 후보로서 인사청문회를 앞둔 박범계 의원도 부엉이 모임에 속했다.
문 대통령이 친문 의원들을 연이어 기용하는 것은 정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장관을 비롯해 여러 직의 인사를 하는 데 있어 출신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도덕성, 전문성, 리더십에서 누가 적임자냐하는 인선 기준에 따라 선정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각으로 박영선 중기부 장관, 강 장관이 교체되면서 여성 장관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한정애 환경부 장관 후보자 등 3명만 남게 된다. 18개 부처 중 16%로, 장관 3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에 미치치 못하는 수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3차례에 걸쳐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환경부, 외교부,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9개 부처에 관한 개각을 단행했다.
개각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개각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등 일부 부처에 대한 추가 개각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집권 후반기의 안정적 마무리, 또 후반기 성과 창출을 위해 항상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