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간 돈독한 신뢰를 쌓으며 과감한 ‘톱다운'(하향식·Top down) 방식으로 비핵화 협상을 진행해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향후 바이든 행정부와는 이러한 협상 방식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동맹을 우선시하며 톱다운이 아닌 ‘보텀업'(상향식·Bottom up) 방식의 협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의 셈범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북한 측은 현재까지 바이든 당선인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며 ‘무반응’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대남·대미 등 대외적인 메시지 없이 북한 주민을 향한 대내적인 메시지만을 발신했다. 미국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은 추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살펴본 후 북한의 전략을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의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북핵 문제가 미국의 외교과제 목록에서 후순위에 있기 때문에 대북 정책이 검토되고 관련 조직·인사가 확정되기까지는 오는 6~7월까지의 시간이 모두 소요될 것으로 보고있다.
그럼에도 바이든 당선인이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내면서 북한 문제를 다뤄왔고,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정책 재검토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추후 어떠한 정책을 내 놓을까. 북한이 원하는 계산법을 내놓을까.
일반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전 행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을 모두 바꾸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북 협상 방식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협상 방식은 톱다운 방식에서 ‘보텀업’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북 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2기 정책이 채택될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 때보다 한층 고조된 북핵 위협의 수준, 당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 전략적 인내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경우 최종적으로 전략적 인내 방식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또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 원칙을 중시해 기존 공화당 정부가 선호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또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방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미국이 빠른 방식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기 보다 한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는 남겨두면서 북한의 핵능력을 줄일 수 있는 협상 방식이 나올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페리프로세스 2.0’과 같은 포괄적 로드맵을 가지고 북한과 접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북핵 협상의 최종 키는 북한이 쥐고 있다. 미국의 설정한 대북 정책에 북한이 어떻게 호응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자칫 미국이 시간을 끌 경우 북한은 군사도발 등 강경한 대미 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에는 북핵 협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시점에서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한반도전략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30일 INSS 전략보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바이든 시대에는 한국의 외교적 역할공간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미국이 다자협상을 추진하는 경우, 다자협상 공간에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외교적·정책적 역량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 한미갈등 요소를 최소화하고 한일협력 공간을 확대하며, 중국의 일방적 대북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무엇보다 정책 공백기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면서 다자 간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과 종전선언 프로세스의 활용을 그 예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