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대대적 투자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배터리 영업비밀침해 소송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투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14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해 말 기준 파우치형 전기차 배터리의 연간 글로벌 생산능력은 총 120GWh 수준이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 70GWh, 중국 15GWh, 한국 10GWh, 미국5GWh 등으로 미국에서의 생산능력이 가장 작다.
원통형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중국 남경 및 한국의 오창공장을 합해 총 20GWh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말까지 파우치와 원통형을 합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총 155GWh 규모로, 2023년까지는 260GWh로 늘려나갈 방침이다.
이 회사가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만 독자적으로 70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투자가 이뤄지면 LG에너지솔루션의 독자적인 생산능력을 기존 미시간 생산공장과 함께 75GWh로 늘어난다.
이와는 별도로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의 합작법인을 통해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35GWh 규모의 1공장에 이어 올해 상반기 안에 이와 비슷한 규모의 2공장 투자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2공장까지 확정되면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내 연간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140GWh 이상으로 확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전기차 및 ESS(에너지저장장치)용 파우치 배터리뿐만 아니라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에도 신규 진출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은 미국 전기차 및 ESS시장의 환경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한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그린 에너지 분야에만 4년간 2조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의 일환으로 정부 관용차 300만대를 전기차로 교체하고, 지자체의 전기스쿨버스 50만대 구매 정책도 추진한다. 전기차 구매를 장려하기 위한 구매 인센티브 확대, 전기차 충전소 50만개 설치 등 시장 수요 견인 정책도 마련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2월 미국 전기차 시장 전망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작년 30만대에서 2025년 240만대, 2030년 480만대, 2035년 800만대 등 연평균 25% 성장을 예상 예상했는데, 바이든 대통령 당선 전 예상치는 2025년 150만대, 2030년 400만대, 2035년 660만대 수준이었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라는 리쇼어링 정책도 강력히 추진한다. 특히 미국산이 아닌 전기차를 미국에 판매할 경우 10%의 징벌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인데, 미국산 전기차의 필수 조건은 배터리 셀의 현지 생산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의 그린뉴딜 및 친환경 정책을 고려해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지를 확보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그린필드(Green Field)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는데, ITC가 SK이노베이션과의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준 이후 적극적으로 투자방침을 대외에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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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공장 생산라인 © 뉴스1 |
최근에는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뜻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 지역매체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에 따르면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이달 10일(현지시간) 라파엘 워녹(민주·조지아) 상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조지아주에 직접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거나 SK이노베이션의 기존 공장 인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ITC 패소 결정으로 발이 묶인 SK를 압박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ITC는 지난달 10일(이하 현지시간) SK가 LG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SK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에 따라 SK의 조지아주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게 되면 수천개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적지 않은데, LG가 대신 나서 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브라이언 켐프 미국 조지아 주지사는 지난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ITC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금지 조치를 뒤집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켐프 주지사는 “SK가 공장을 짓고자 투자한 26억달러(약 2조9500억원)는 조지아주 역사상 최대 규모로, SK의 공장은 미국 내 주요 EV 배터리 공장 가운데 유일하게 연방정부 보조금 없이 건설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다음달 11일까지로, 대통령 심의기간 중에 LG와 SK 간 합의가 이뤄지면 SK이노베이션의 공장 가동과 배터리 미국 수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SK이노베이션은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지만 항소 기간에도 수입금지 및 영업비밀 침해 중지 효력은 지속된다.
재계 관계자는 “LG가 미국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실제 미국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을 겨냥한 것이겠지만, SK와의 협상테이블을 유리한 조건으로 이끌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