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요식업계가 상징처럼 여겨지던 ‘대용량’ 전략을 접고 음식 제공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 치료제 사용이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식사량이 줄어든 데다, 식자재·에너지·인건비 상승까지 겹친 결과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2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아시아 퓨전 체인 PF창은 지난해 메인 요리에 ‘미디엄(중간)’ 분량을 새로 도입했다.
수프와 샐러드, 빵을 무제한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 올리브가든도 지난달 미국 내 900개 매장에서 기존 메뉴 7가지를 더 적은 분량으로 구성한 새 메뉴를 선보였다.
해산물 체인 앵그리 크랩 쉑은 대구튀김, 치즈버거, 랍스터 롤 튀김 등을 작은 바구니에 담은 점심 메뉴를 출시했다. 뉴욕의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치는 음식의 양과 가격을 3분의 1로 줄인 이른바 ‘오젬픽 메뉴’를 도입했다.
투치의 창립자 맥스 투치는 “비만 치료제를 권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식욕 상태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음식을 남겼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KFC, 피자헛, 타코벨 등을 보유한 얌브랜즈도 KFC가 미국 내 약 4000개 매장에서 제품 분량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외식업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농산물 가격 하락을 배경으로 ‘슈퍼 사이즈’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국제 학술지 ‘푸즈(Foods)’에 게재된 2024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음식 소비량은 프랑스보다 약 13%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싱크탱크 랜드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12%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사용 중이다. 모닝컨설트 조사에서는 해당 약물 사용자가 외식 빈도와 주문량을 모두 줄이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소고기 등 주요 식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에너지 비용과 인건비 부담도 커지면서 업계는 수익성 압박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블랙박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요식업계는 5개월 연속 방문객 수와 매출 증가세가 둔화했다.
라보뱅크의 소비자식품 애널리스트 JP 프로사르는 “가장 명확한 대응은 분량을 줄이는 것”이라며 “가격을 낮춰 고객을 다시 유치하는 동시에 GLP-1 확산에 따른 수요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