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현대차그룹을 세계 3위 완성차 기업으로 끌어올리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중심에 세웠지만, 앞으로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국 전기차 공세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미국 현지화 전략 가속…관세 부담 속 수익성 확보가 관건
정 회장은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단지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2005년 고(故) 정몽구 명예회장이 앨라배마에 첫 공장을 세워 현지 생산의 기반을 닦았다면, 정의선 회장은 이를 전동화 중심의 고수익 구조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25%에 달하는 미국 내 한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다.
경쟁국인 유럽·일본과 유사한 15% 수준으로 낮추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의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고, 앨라배마·조지아·HMGMA를 포함한 연간 120만 대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70만8000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비중은 20.3%로 처음 20%를 돌파했다.
그러나 미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시장 환경이 불안정해지자, 현대차는 아이오닉 5의 2026년형 모델 판매가를 1400만원 낮추며 점유율 방어에 나섰다.
시장조사기관 워즈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7.6%로 테슬라(42.5%), GM(13.3%)에 이어 3위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통한 단기 점유율 유지는 한계가 있다.
정 회장은 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관세 조정을 통해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 중국 전기차의 유럽 공세…보급형 전기차로 맞선다
한편, 중국 전기차의 급속한 유럽 시장 확산도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도전 과제다.
BYD, 샤오펑, 지커 등 중국 브랜드는 헝가리에 공장을 짓고 저가 전기차를 앞세워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자토 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내 중국차 점유율은 5.1%로 전년 대비 91% 급증했다.
이에 정 회장은 유럽 체코공장을 직접 방문해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대 방안을 점검하고, 아이오닉 3·캐스퍼 일렉트릭 등 2만~3만 유로(약 3000만~4000만원)대의 보급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맞대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럽기술연구소의 전동화 기술 역량을 강화해 유럽 내 생산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 자율주행·로보틱스 신사업…수익화는 장기 과제
정의선 회장은 취임 초부터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 비중의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사장의 UAM 법인 슈퍼널(Supernal) 설립, 그리고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과 모셔널(Motional) 투자 등을 이어왔다.
포티투닷은 2028년을 목표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양산을 준비 중이며, 모셔널은 아이오닉 5 기반 무인 로보택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수익성이 가시화되지 않았고, 테슬라·GM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한발 앞서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에는 ‘성과 가시화’라는 새로운 시험대가 놓였다.
정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전기차 시장의 지각 변동 속에서도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말자”고 당부했다.
취임 5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분명하다 — 미국 시장의 관세 리스크 관리와 중국발 전기차 공세 대응, 그리고 미래 모빌리티에서의 새로운 성장 축 확보다.
그의 다음 5년은, 현대차그룹이 단순한 완성차 제조업체를 넘어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 기업으로 자리 잡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