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기침체에 자금경색까지 겹치자 기업들이 현금 유동성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20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250조원으로 올해초보다 28조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축소 및 보류, 비용 절감 등 위기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에 나선 결과다. 경제 위기 상황에선 ‘믿을 건 현금’이라는 판단 아래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는 위기 극복을 위한 ‘생존’에 무게를 둔 것이다.
◇ “위기에 믿을 건 현금”…시총 상위 20개사 현금성 자산만 250조 ‘역대 최대’
1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코스피 상장사 시총 상위 20곳의 현금성 자산은 250조262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221조9788억원)보다 28조2839억원, 지난 6월 말(247조2434억원)과 비교하면 3조193억원 늘어난 수치다.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이 128조819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포스코홀딩스도 20조9420억원을 쌓아놨다. 기아(20조3100억원), 현대모비스(10조9554억원) 등도 현금을 대규모로 확보했다.
기업들은 대출도 늘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3조7000억원 늘었다. 지난 1월 이후 10개월 연속 증가한 것으로 올해 들어 103조5000억이나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 잔액은 216조5000억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95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 보유를 확대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회사채 시장이 위축되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은행 대출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을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강원도 보증 공사채 디폴트) 이후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통상 중·장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활용하는 회사채는 10월 3조2000억원의 순상환을 기록했다. 2001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대신 단기자금 조달에 사용되는 기업어음(CP)·단기사채는 우량물을 중심으로 3조1000억원 순발행을 기록했다.
천소라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거나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발생할 경우 경기둔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래 위한 투자까지 축소…생존에 ‘무게’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회사채 현황 파악에 나섰고 현대차그룹은 투자 규모를 낮춰 잡으며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구자용 현대차그룹 IR 담당 전무는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연초에 말씀드린 투자계획 9조2000억원 목표에서 8조9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며 “대외 변동성 확대에 따른 유동성 확보와 투자계획 일부 수정에 따른 영향”이라고 했다.
SK그룹도 계열사별로 자금 경색에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자금흐름의 변동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열린 ‘CEO 세미나 2022’에서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데이터 기반 경영전략 실행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각 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 한파’ 직격탄을 맞은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액을 올해의 10조원 후반에서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2009년 업계 투자액 절감률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포스코그룹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일찌감치 ‘현금중심 경영’에 나섰다. 한화솔루션 회사채 미매각을 겪은 한화그룹도 “선제적 위기 대응과 효율적 자금 관리에 차질 없도록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당분간 투자 축소와 비용 절감 등 비상 경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내년에는 대외 여건이 조금 더 악화하고 수출이 부진해질 것”이라며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금리 인상도 계속되면서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 머물러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