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을 금지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해선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했다. 두 기업 모두 중국 내 생산에 문제가 없게 돼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선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향후 미국의 추가 제재가 나올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와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날 오후 늦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서면을 통해 중국 공장에 대한 기술·장비 수출 통제 1년 유예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앞서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중국 현지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두 회사는 미국 정부로부터 개별 심사를 받아 중국 내 공장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받는 절차를 준비한 바 있다.
이번 미국 정부의 1년 유예 조치는 별도의 승인이 없어도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개별 심사로 장비 반입을 허용하겠다는 기존 원칙에서 한 단계 더 완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중국에서 반도체 제품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미국과 원만하게 협의가 됐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유지하되 한국 기업에 피해를 주진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로 장비 반입이 가능하게 되면서 삼성전자 시안(낸드플래시)·쑤저우(패키징)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D램)·다롄(낸드플래시)·충칭(패키지) 공장은 중국 내 생산활동을 문제없이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업계에선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번 유예 조치는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장의 업그레이드에만 한정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향후 중국 내 장비 반입과 관련해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한국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당장은 괜찮지만 1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모든 장비를 반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정부는 극자외선(EUV) 노광기 등 최첨단 장비의 중국 내 반입은 여전히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도 수년 전부터 우시 공장에 EUV 노광기를 반입하려 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에 아직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중국 내 첨단공정 증설도 제한될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건 향후 미국의 추가 제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거기에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지 등 아직 불확실성이 크고 사태도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괜찮지만 앞으로 우리 기업이 중국 공장을 증설할 땐 미국 정부와 일일이 협의해야 할 수도 있고, 미국이 제동을 걸어 꼭 필요한 장비 반입이 막힐 수도 있다”며 “만약 미국이 더 강한 제재를 내놓고 중국이 강경 대응으로 바뀔 경우 매우 난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는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반도체 업계가 ‘탈(脫) 중국’을 위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중국 제재 기조가 확실해진 만큼 중국에 추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건 위험하다”며 “앞으로도 계속될 미-중 갈등에 대비하기 위해선 미국·중국이 아닌 한국 내 반도체 생산 설비 확충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