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을 찍는 순간, 심연에서 벗어났어요.”
배우 문근영이 영화 감독으로 돌아왔다.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한 그는 최근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영화를 연출하며 한층 더 가벼워진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연출을 한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실줄 몰라서 당황스럽고, 부담스럽고 얼떨떨해요.(웃음) ‘감독님 감독님’ 들을 때마다 ‘깜짝이야’ 해요. ‘너무 어색해, 하지 마세요’ 얘기하죠. 영화를 좋게 봐주셨다는 분들이 많네요. 사실 유튜브로만 소통하려고 했는데 큰 화면으로 보니까 확실히 좋긴 하더라고요. 큰 화면에서 우리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는 마음이 큽니다.”
문근영은 지난 10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XL) 섹션에서 자신의 연출 데뷔작인 단편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의 상영 및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세 편의 단편 영화는 문근영이 직접 연출하고 각본을 썼다.
“연기를 하려고 만들었어요. 제가 제 감정을 연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였죠. 정말 연기 재밌게 해보려고 만들었어요. 다음 작품들은 이렇게 영화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영화 감독 데뷔’ 이렇게 돼버리니 뭔가 계속 영화적인 것을 해야할 것만 같아요.(웃음)”
문근영 개인의 스토리를 각본으로 만든 영화 ‘심연'(Abyss)은 심연처럼 깊은 물 속에 잠겨있는 여자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문근영은 러닝타임 내내 현란한 수중 연기를 보여준다. 수중에서 표정과 동작만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는 쉽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 문근영은 하지만 GV에서 “적성이었다”고 얘기해 웃음을 줬다.
“원래 물놀이를 좋아하고, 물을 원체 좋아해요. 수중 세트장 운영하시는 대표님이 저희 콘티를 보고는 그러셨대요. ‘이거 하루만에 못 찍는다’고. 최소한 5일은 걸린다고요. 저희가 하루 만에 찍어내는 걸 보면서 물론 그날 예정된 것보다 2시간을 넘기긴 했어요. 결국에 두시간을 오버해서 찍어내고 말 때 대표님이 (고개를 저으면서) ‘하 저렇게 독한 사람 처음 봤다’고, 오늘 다 찍고 가라고, 문근영씨 같은 사람은 처음 봤대요.(웃음) 사장님이 저는 언제든 와도 된다고 하셨어요.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죠.”
‘심연’과 함께 공개된 다른 단편 영화 ‘현재진행형’과 ‘꿈에 와줘’는 문근영이 만든 바치창작집단 소속 크루인 배우 정평과 안승균의 이야기를 각각 담은 작품들이다. 문근영은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각본을 썼고, 두 사람을 주연으로 한 각각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정평의 이야기로 만든 ‘현재진행형’은 아무리 애써도 자신을 비추는 핀 조명으로부터 쉬이 벗어날 수 없는 남자의 미련이 깊은 잔상을 표현했다. 안승균의 이야기로 만든 ‘꿈에 와줘'(Be In My Dream)는 상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조명한다. 그리움에 몸을 의탁해 펼치는 남자의 무용이 평온한 꿈속에 이른 것처럼 아늑한 느낌에 젖게 한다.
정평, 안승균과의 인연은 ‘유령을 잡아라’에서 시작됐다.
“승균이와는 ‘유령을 잡아라’를 같이 했고, 그거 하면서 되게 많이 친해졌고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드라마가 끝나고도 보고 술도 마시고 연기 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승균이가 제일 친한 절친이 정평이 형인데, 승균이가 나중에는 따로 만나기 귀찮으니까 그냥 셋이 만나자고, 만나면 하는 얘기 똑같으니까 셋이 만나자고 해서 그렇게 만났어요. 그렇게 만나보니 셋이 연기 생각도 비슷하고 도전의식도 있고, 창작애도 있고 해서 같이 영화를 해보자고 말하게 됐죠.”
영화를 만들면서 문근영은 정평, 안승균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때로는 감독으로서 두 사람을 설득시켜야 할 때도 있었고, 자신이 타협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죽도록 싸웠어요. 설전을 아주 많이 했어요. 멀리서 볼 때는 거의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죠.(웃음) 열띤 논의를 했어요.”
영화 ‘유리정원’을 함께 한 신수원 감독은 문근영 연출작 GV의 진행을 맡아줄 정도로 각별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 신수원 감독은 GV에서 배우 이정은이 문근영의 작품 ‘심연’을 보고 문근영에 대해 “문근영에게서 줄리엣 비노쉬를 봤다”고 극찬한 사실을 알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칭찬을 듣고) 그냥 좋았어요.(웃음) 이정은 배우님을 너무 좋아해요. 사랑합니다. ‘오마주’ 시사회 때 인사드렸더니 ‘뒷풀이 자리 와서 꼭꼭 보고 가’ 그러셨는데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왔는데 그게 마음의 짐이 돼 아직 남아있네요.”
문근영은 지난해 데뷔 때부터 16년간 함께 해온 소속사 나무엑터스를 나왔다. 당시 그는 소속사에서 나오는 사실을 알리며 팬들에게 “전환점이 필요하다” “환기하고 싶다” “재정비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충분한 재정비를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환기가 된 느낌이다”라고 답했다.
“여행을 진짜 많이 다녔어요.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정말 그래서 다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어요. (소속사 이적의) 다른 의미는 없이 그래서 사무실에서 나오게 된 거예요. 많이 쉬었고, 그래서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요. 그런 상태에서 ‘심연’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했고 바치창작집단을 하면서 리프레시가 됐고 환기가 된 느낌이에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 연기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도 조금씩 더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도 얻었고요.”
문근영은 “이제 연기를 한다면 예전의 나와는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만큼의 변화들이 내적인 변화들이 있었다”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통해 배우로서 충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근영의 바치창작집단은 두번째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문근영은 이번 작업을 통해 글을 쓰는 것에 특별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각본을 재밌게 썼던 만큼, 크루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들도 꾸준히 발전시켜갈 예정이다.
“지금 다들 들뜬 상태에요.(웃음) 우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글부터 써놓고, 다른 분들 만나서 글 작업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정기적으로 뭔가를 내놓겠다는 약속은 내놓지 못하지만…꾸준히 오래 계속 하는 게 목표에요. 중간에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