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産) 철강의 대미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폐지와 관련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재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록 경제안보 의제로 꼽힌 반도체, 배터리, 원전 분야만큼 세밀한 수준의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지만 미국과 대화채널을 확보하면서 해결의 발판은 마렸했다는 것이다.
25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 기간인 지난 21일 진행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한미 상무장관 회담’에서 이 장관은 미국내 수요기업과 현지 투자기업들의 철강 수급 원활화를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의 유연성 제고를 요청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상징하는 법안이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특정 수입품이 자국 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량을 제한하고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철강재에 25% 이상의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우리나라는 협상을 통해 고율관세는 피했지만 연간 대미 수출 물량이 2015~2017년 평균 수출량(383만t)의 70%인 263만t으로 제한됐다.
이후 미국이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동맹국들과 철강 분쟁을 해소하자 우리나라도 쿼터 및 관세 개선을 위한 협상 재개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미국 정부는 재협상조차도 거부해왔다. 러몬도 장관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한국)은 미국의 전 정부와 쿼터 조정을 통해 일종의 타협을 했다”며 “따라서 재협상은 우리에게 높은 순위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철강업계에선 숙원으로 꼽히는 무역확장법 232조 폐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급망 등 경제안보 사안의 연장선에서 다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재협상 여지도 없었던 상황에서 정상회담 기간 중 이 장관의 제안은 일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우리나라 산업부와 미국 상무부가 연 1회 정례 회담을 갖기로 했고 국장급 산업협력대화를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등 대화 채널이 꾸려진 것도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이 가동되고 한미 공급망 협력이 이어지면 무역확장법 232조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물꼬는 텄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반도체, 원전 등 다른 분야 협력과 달리 미국 측의 전격적인 철강 쿼터제 폐지라는 ‘깜짝선물’이 없었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무역확장법 232조 개선을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최종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미국 정부도 자국 철강업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도 철강업계는 주요 이해관계 집단 중 하나라서 선거를 앞두고 성급한 결론을 내긴 어려울 수 있다”며 “이르면 연말쯤 재논의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