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업계의 ‘초대형 빅딜’로 꼽혔던 미국 엔비디아와 영국 ARM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됐다. 반도체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반대를 넘지 못한 것이다.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려는 삼성전자도 이런 동향을 주시하면서 신중하게 M&A를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9일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미국·영국·유럽연합(EU) 등의 반대로 인해 ARM 인수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ARM의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는 매각 대신 연내에 ARM의 기업공개(IPO)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ARM은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로 삼성전자·애플·퀄컴 등이 판매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 기술을 갖고 있다. 현재 전세계 모바일 기기의 약 95%가 ARM의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각국의 경쟁당국과 반도체 업계는 지난 2020년 9월 두 회사의 합병 추진 발표 이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엔비디아의 경쟁 기업들은 ARM의 모바일 반도체 설계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데, 엔비디아가 기술 제공을 막거나 로열티를 과도하게 올리는 독과점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인수를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연합(EU)과 중국 경쟁당국도 승인을 미뤘으며 삼성전자·인텔·퀄컴 등 업체들도 FTC에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번 딜이 성사됐다면 엔비디아는 전세계 모바일 기기의 핵심 기술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도체업계는 엔비디아의 독과점 가능성이 해소됐다며 안도하면서도 앞으로 반도체 ‘빅딜’이 성사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섞인 목소리도 내고 있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 이후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반도체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시장 논리보다 국가의 산업 안보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전세계 실리콘 웨이퍼 3·4위인 대만 글로벌웨이퍼스와 독일 실트로닉의 M&A가 독일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경쟁당국이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의 M&A를 승인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도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와 관련해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중국당국으로부터 조건부로 겨우 승인받았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가 목표인 삼성전자는 최근 대형 M&A를 예고하면서 독일 인피니온과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업체의 M&A를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요 경쟁당국들이 엄격한 규정과 기준을 적용하면서 삼성전자도 M&A 추진시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삼성전자는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 기업인 만큼 주요 국가들의 견제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사업을 확대하려는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과도한 영향력 확보를 우려한 주요국의 견제로 인해 M&A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 업계에선 지난해 말 기준 약 106조원의 순현금을 ‘실탄’으로 보유한 삼성전자가 이런 동향을 주시하면서 M&A 대상을 신중하게 찾고 있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호주의 심리 강화로 인해 반도체 빅딜은 까다롭게 심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당장은 작지만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인수하는 ‘스몰딜’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