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이 관철되면 미주·유럽 등 장거리 노선 운항이 축소돼 우리 항공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포~중국·일본 등 일부 ‘알짜노선’을 제외한 장거리 노선에서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LCC보다 외국항공사가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회수된 운수권을 국내 항공사에 재분배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LCC들은 새로운 노선 진입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혜 항공사로는 통합자회사(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 등)를 제외한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플라이강원,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김포공항발 중·단거리 운수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해당 노선은 도심과 가까워 탑승률이 높아 수익성이 높은 알짜노선으로 꼽힌다. 최근 LCC들을 대상으로 재배분 희망 노선을 조사한 결과 김포-하네다(도쿄) 노선을 가장 많이 꼽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하던 장거리 운수권 재분배 과정에서는 LCC가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충분한 준비 기간을 준다고 하지만, 중소형 단일 기종 위주의 LCC들이 단시간에 대형기재 운용을 확대해 장거리 노선에서 수익을 내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 해외 대형항공사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신규진입할 개연성도 높다.
운수권은 국가 간 항공협정을 통해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에 배분하는 운항권리다. 한국과 프랑스 각각 14회씩(총 28회) 운수권을 갖고 있는 한-프 노선으로 추후 상황을 가정했을 때 통합대한항공은 독점방지 차원에서 6회를 내놓았지만, 국내 LCC는 수익성 등을 이유로 6회를 가져가지 못 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가 인천국제공항에 10회 정도 띄우고 있었다면, 프랑스 대형항공사가 최대 4회를 신규로 진입할 수 있다.
항공 자유화 협정을 맺은 미국 등과는 공항 슬롯(공항 시간별 운항 권리)만 확보하면 진입할 수 있다. 향후 상황에 따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던 노선에 해외항공사들이 진입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처럼 장거리 노선을 외항사들에 내주면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우리나라 항공 산업의 규모와 기업별 순위, 경쟁력 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항공이 당초 목표로 삼은 통합이후 글로벌 10위권 진입도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로 수익성은 김포공항발 일본·중국 노선 등이 높지만, 매출은 인천공항발 미주 노선이 일본·중국을 합친 것보다도 크다. 대한항공의 2019년 기준(코로나19 이전) 여객사업 노선별 매출 비중에서 △미주 29% △구주 19% △동남아 21% △중국 12% △일본 9% △국내선 6% △대양주 4% 순으로 집계됐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는 해외에 운수권을 안주겠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해외항공사들에게 유리한 구도가 될 개연성이 높다”며 “현재 시점에서 제주항공 등 LCC들은 중·단거리조차도 준비가 덜 돼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준비할 여력도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는 (LCC들의) 미래 가능성을 본다는 얘기인데 LCC들의 경쟁력이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는다면 통합항공사의 경쟁력만 침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숙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LCC들은 중소형 기종을 중심으로 기단을 운영 중이어서 장거리 노선 운항은 쉽지 않다. 최근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대형기종인 ‘A330-300’와’보잉 787-9(드림라이너)’를 각각 도입하며 장거리 노선 진출을 시도하는 정도다.
대형 기재 몇 대를 운영한다고 해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고 한 대만 말썽부려도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대체기를 투입할 여력이 없는데다, 연결 편까지 줄줄이 지연·결항으로 이어지면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에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장거리 노선 확대보다는 현 사업모델에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춘다는 게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기종 다양화에 따른 초기투자와 복잡화로 인한 비용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 후 대형기 도입 검토에 나설 예정”이라며 “운수권 재분배와 관련해서는 현재는 장거리 노선보다는 중·단거리 노선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티웨이항공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통합작업이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중·대형기가 부족해서 장거리 운항을 못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당연히 중·대형기 한두 대 운영으로 장거리 노선에서 수익성을 내기 힘들다”면서 “다만 중·대형기인 A330-300 도입이 가시화됐기 때문에 이후 조종사 및 승무원 훈련·교육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추가 기재 도입에 걸리는 기간은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LCC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재무상태가 악화하면서 통합 추진 전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LCC들은 지난해 무상감자·유상증자 등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수백억원대 분기 적자를 지속하면 버티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LCC들이 대형 기종을 운영해 수익을 내려면 경제성을 면밀히 분석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며 “글로벌 항공사들과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는 대형항공사에 비해 환승편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도 약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