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굴의 산악인’ 고 김홍빈 대장.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이었지만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는 등 국민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희망을 심어줬다.
그는 지난 7월 카슈미르 북동부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 후 하산하던 중 조난사고로 실종, 세상을 떠나 산악계에 큰 슬픔을 남겼다.
◇”많이 춥다…” 김 대장의 마지막 ‘구조 요청’
지난 7월17일 오후 11시쯤(현지시각) 베이스캠프를 출발, 정상을 향한 등반을 시작했다.
출발 18시간 뒤인 18일 오후 4시58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고봉인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완등 소식을 전한 김 대장은 하산을 시작했다. 동행한 하이포터 4명이 먼저 내려왔다.
19일 김 대장이 해발 7900m 지점 크레바스에서 떨어져 조난당했다는 사실은 5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알려졌다.
같은 날 오전 5시55분쯤 한국에 있는 후배 조모 추진위원에게 위성전화가 걸려왔다. 김홍빈 대장의 구조 요청 전화였다.
“내가 볼이라는 위치에서 조난을 당했다. 구조 요청을 한다. 밤을 새웠다. 주마 2개와 무전기가 필요하다.”
조 위원은 “위성 전화기 배터리는 충분하냐”는 등의 대화를 나눴고 김 대장은 “많이 춥다”며 전화를 끊었다.
◇구조헬기 투입해 수색 작업…”생환 어렵다” 결국 수색 중단
파키스탄 육군 항공대 구조헬기 2대가 7월24일 오후 1시45분(현지시각) 브로드피크 인근의 카르두에서 베이스캠프로 출발했다.
헬기 2대가 두 차례로 나눠 총 9명의 구조대원과 장비 등을 싣고 수색작업을 벌이고,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판독까지 했으나, 김 대장의 모습은 찾지 못했다.
김 대장의 부인 등 가족은 사고 지점의 험준함, 수색 결과 등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생환이 어렵다고 보고 추가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김 대장 부인은 “김 대장은 평소 사고가 나면 2차사고나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산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며 “수색 대원들의 2차사고 우려가 크니 수색을 중단해달라”고 전했다.

◇산에서 사고 당해 손가락 잃어…트라우마 극복까지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김 대장은 1983년 대학 산악부에 가입하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28세였던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손가락 10개를 모두 잃는 시련을 겪었다.
김 대장은 사고에도 좌절하지 않고 6년 뒤인 1997년부터 2009년까지 13년 동안 전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장애인 최초 7대륙 최고봉 완등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11년 티베트 초오유, 2012년 파키스탄 K2, 2013년 네팔 캉첸중가, 2014년 네팔 마나슬루, 2017년 네팔 로체·파키스탄 낭가파르밧, 2018년 네팔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하며 히말라야 14좌 중 13개봉 정상에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