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만 54세 생일날, 다시 재판장에 출석했다.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 5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발 복합위기 그림자가 한국 경제에 짙게 드리운 상황에서 출장 복귀 후 경영 전략을 논의해야 할 때지만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공판에 출석했다.
유럽 출장으로 지난 10일과 16일 재판이 미뤄지면서 3주 만에 다시 출석했다.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의혹 관련 재판이 진행되면서 일주일에 1~2차례 법원에 출석해 재판받고 있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은 이날 만 54세 생일을 맞았다. 재판장에서 생일을 보내게 된 셈이다.
지난해 만 53세 생일 때는 서울구치소에서 조용히 보냈었다. 앞서 만 52세 생일 때는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주요 사업 중장기 전략 등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로 인한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 저하를 우려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유죄 판결을 받아 오는 7월 형 집행 종료일로부터 5년 동안 취업을 제한받는다.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에서 무보수·미등기·비상근으로 경영 자문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10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3년 가까이 총수 부재의 상태다. 원자잿값 급등과 공급망 이슈, 고금리,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총수 부재는 리스크 요인일 수밖에 없다.
당장 유럽 출장 복귀 후 대응 전략 논의도 미뤄지게 됐다. 앞서 이 부회장은 취업 제한 족쇄 속에서도 유럽 출장을 떠났다. 현지에서 ASML과 반도체연구소(imec), BMW 등 12일간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강행군을 소화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 성장을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지원에 나섰다”면서도 “재판 등 부재 상황이 길어질수록 삼성에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다. 앞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이 부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찬성이 68.8%로 반대 23.5%를 크게 앞섰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 2일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간담회에서 “기업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란다”며 “기업인이 세계 시장에서 더욱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찬희 2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3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최고경영진·준법위 간담회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