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에 대한 일본의 갑작스런 ‘트집’으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미·일 외교차관 공동기자회견이 무산되면서, 미국이 구상하는 ‘한미일 3각 공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를 놓고 의구심이 제기된다.
당초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오전 한·미·일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외교차관협의회 결과를 알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는 웬디 셔먼 부장관 혼자만 나왔다.
셔먼 부장관은 “한동안 그래 왔듯 일본과 한국 사이에 계속 해결돼야 할 양자 간 이견이 일부 있었다”며 “그러한 이견 중 하나가 오늘 회견 형식의 변화로 이어졌다”며 공동회견 불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본인의 입으로 일본이 김 청장의 독도 방문을 문제 시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은 기자회견에서 독도 관련 질문이 나오면 ‘일본은 강경 입장 발표→한국은 반론 제기’라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외교가의 전반적인 평가다.
이번 사태는 그간 미국과의 공조에 있서 ‘100% 코드’를 맞추던 일본이 호스트인 미국을 난처하게 했다는 평가다. 대(對)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네트워크 확대에 외교 역량을 쏟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체면을 구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대중견제를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를 기치로 내걸고 동맹국과 우호국 규합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동맹국 한국과 일본은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에 있어 핵심국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울러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 참여 비공식 협의체)를 비롯해 한·미·일 3각 공조 등 기존의 ‘소규모’ 협력체를 활용, 이들 간 연계·협력을 모색하며 자연스러운 ‘대중견제망’을 조성해 왔다.
미군이 주둔해 있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 입장에서는 군사 전략적 가치 뿐만 아니라 미중패권 경쟁과 직결되는 글로벌 공급망 등 경제·통상 분야에서도 핵심 중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미·일 3각 공조가 삐걱거리는 모습이 대외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생각보다 빨리 터졌다”는 평가도 감지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일 협력이 계속 가더라도 한일관계가 어느 수준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단이 날 가능성은 상존했다”며 “아무리 잘 굴러간다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는데 이번에 일본을 통해 생각보다 빨리 드러났다. 일본의 태도에 미국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문제는 한일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된다더라도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독도 문제는 합의가 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한·미·일 3각 공조의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중재역은 상당히 제한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 미국이 그렇다고 한·미·일 3각 공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계를 노출했지만 경제안보 등 분야의 협력은 협력대로 갈등은 갈등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미국은 자기들의 국익이 한·미·일 공조에 달려있기 때문에 계속 끌고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