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물간 ‘구식’으로 평가받았던 8인치(지름 200㎜) 웨이퍼가 반도체 공급난을 맞아 재조명받고 있다. 반도체 시장이 12인치(지름 300㎜) 웨이퍼로 이동하고 있지만 8인치 웨이퍼도 높은 가성비와 넓은 쓰임새로 품귀 현상까지 겪으며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11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전세계 상위 10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량은 연평균 1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8인치 웨이퍼의 생산량 증가율은 연평균 3.3%로 12인치 제품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웨이퍼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많은 칩을 제작할 수 있어 생산성이 향상된다. 삼성전자·TSMC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12인치로 세대교체를 진행하면서 8인치 웨이퍼는 한때 한물 간 기술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비용이라는 강점과 반도체 수요 급증·공급난이 겹치면서 최근에는 8인치 웨이퍼를 ‘구식’으로만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12인치 웨이퍼로 이동하겠지만 당장 필요한 8인치 재고가 너무 부족해 오히려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오는 2024년 8인치 웨이퍼의 생산량이 월 660만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2020년과 비교해 95만장 많다.

우선 IT 시장의 성장세로 12인치보다 원가가 낮은 8인치 웨이퍼의 쓰임새가 커졌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첨단 공정이 필요하지 않는 제품은 8인치 웨이퍼로 만들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노트북 등 비대면 생활을 위한 IT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저렴한 8인치 웨이퍼의 수요도 급증했다.
최근 반도체 공급난을 겪은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의 직접 설계에 나선 점도 영향을 미쳤다.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많은 물량을 생산하는 것보다 여러 종류를 생산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데, 원가가 낮아 ‘다품종 소량생산’에 특화된 8인치의 수요가 확대된 것이다.
DB하이텍은 틈새시장인 8인치에 집중하면서 지난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DB하이텍은 국내외 8인치 제품의 호황으로 현재 가동률이 100%에 가까우며 이미 올해 파운드리 수주 물량을 모두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단계 위의 기술력을 갖춘 국내외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도 8인치 철수를 늦추거나 진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스마트폰·서버 등 제조업체들은 기존에 8인치 웨이퍼를 써서 만들던 제품의 일부를 12인치로 전환해 제조하려 하지만 쉽진 않다. 공정을 전환하기 위해선 개발 및 검증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의 8인치 공급 부족 현상이 단기간에 완화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트렌드포스 관계자는 “8인치 웨이퍼 부족 현상이 효과적으로 해소되려면 주요 제품들의 생산이 대거 12인치 웨이퍼 기반으로 이전되길 기다려야 한다”며 “이 시기는 2024년은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