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의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불법파견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28일 근로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산업계에 후폭풍이 불고 있다.
포스코뿐 아니라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 자동차업계도 협력 업체 직원들과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이들 기업도 대법원의 확정판결 땐 최대 수천명에 달하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고용해야 한다. 재계에선 이 경우 조단위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한다.
원·하청 구조로 운영되는 타 업계에서도 추가적인 줄소송이 이어질 경우 세계 경기 침체와 맞물려 기업들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법원은 포스코의 제품 생산과정과 조업체계가 전산관리시스템에 의해 계획·관리되는데 하청 노동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전달받은 바에 따라 작업했으며 이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크레인 운전을 통해 코일을 운반하는 업무는 압연공장에 필수적으로 수반돼 포스코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 점 △협력업체가 수행할 업무, 크레인 운전에 필요한 인원 등을 포스코가 실질적으로 결정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소송 기간 중 정년이 지난 하청 노동자들의 소는 각하했다. 대법원은 “(정년이 도래한 원고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게 됐다”며 직권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소송을 각하했다.
대법원이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 소송과 관련해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도 대법원은 현대위아 사내 하청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도 사내 하청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직고용’의 범위를 점차 넓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으로 현대차, 기아, 한국GM도 대법원 판결을 마주해야 한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 현대제철, 한국GM 등은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포스코의 경우엔 관련된 총 8개 소송 하급심에서 3차 소송 1심을 제외하고, 1~4차 소송에서 모두 2심까지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기업들이 법원의 직접 고용 판결을 비롯한 유사 소송에 부담을 느끼는 건 무엇보다 막대한 인건비 영향이 크다.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회사별 비정규직 직원의 규모는 포스코가 1만5000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현대차 2000~3000명, 기아 800~900명 수준이다.
이를 기업별 1인당 평균 연봉을 기준으로 인건비 추정치를 계산하면 △포스코 1억6300억 △현대차 2000억원 △기아 900억원 등이다. 포스코를 포함해 현재 직고용 소송이 진행 중인 기업들이 모두 패소할 경우 인건비만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안팎에선 인건비 등 경영상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이른바 ‘노노(勞勞)갈등’도 우려한다. 이같은 직고용이 이어지면 협력업체 직원 직접고용 문제와 관련해 일부 노동조합이 채용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노조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에서는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 등 각종 악재 속 직고용 비용부담까지 떠안을 경우 경영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도급계약의 성질과 업무 특성, 산업생태계의 변화, 노동시장의 현실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인건비 측면에서 부담을 느끼면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기존 정규직 근로자들과의 공정성 문제와 소송을 우려한 고용축소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신속한 후속조치 등을 통해 대응하겠는 공식 입장을 냈지만 향후 경영상황을 살피며 대책을 고심하는 모양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포스코는 내부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안팎에선 포스코가 동종계열의 현대제철 대응을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대제철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도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어 왔지만 계열사를 설립해 채용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직접고용 시정지침’이 내려오자 석 달 만인 7월 협력사 비정규직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자회사를 통한 협력사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은 대형 제조업체 중 처음이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파장이 있었다.
현대제철은 협력업체 직원을 고용할 현대ITC 등 자회사 세 곳도 설립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50일간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점거한 이후 내놓은 대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