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하영씨(24·여)는 최근 일기쓰기를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접한 이태원 참사 영상이 트라우마로 남아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평소 익숙한 곳에서 사고가 난데다 참사 초기 적나라한 사진과 영상을 다수 접한 것이 큰 충격으로 남았다. 김씨는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고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10·29 참사 열흘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정신적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 도심에서 하루 아침에 가족과 친구를 잃거나 그날의 참상을 SNS로 접한 뒤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심리적 충격을 이겨내려 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일기 쓰고 자원 봉사…나만의 치유법
1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참사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일기쓰기, 자원봉사, 감각자극 등 각자의 방법으로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고 있었다.
참사 발생 불과 한 시간 전 가까스로 이태원을 빠져나온 정모씨(26·여)는 최근 정신건강의에게서 “향수를 뿌려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명상도 시도해 봤지만 오히려 참사 당일이 생각 나 잘 안 되더라”며 “(의사로부터) ‘이럴 땐 차라리 오감을 활성화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의사 진단대로 향이 좋은 보디제품을 애용하고 있다”며 “그렇게 하니 실제로 좀 나아진 것 같다”고 답했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직장인 장모씨(33·여)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지난 7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을 찾은 장씨는 “또래 젊은이들이 고통으로 힘겨워할 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지금와서 작은 것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참사 후 이태원역을 두번째 찾는다는 장씨는 추모공간에 놓인 메시지 카드를 정리하고 국화꽃과 메시지 카드가 비를 맞지 않도록 비닐을 씌웠다. 장씨는 자원봉사가 “저보다 더 마음이 아플 유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일기·향수 모두 긴장 이완에 효과”
전문가는 일기쓰기나 향수뿌리기가 긴장 완화에 실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식호흡도 권장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일기를 쓰는 행동은 (트라우마 치유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며 “외부 자극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집중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예민한 사람은 같은 자극에도 더 예민해 여러 증상을 보일 수 있다”며 “예민해진 긴장도를 낮추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추모와 애도가 일상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도 운동도 좋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소통하거나 자신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것 모두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참사 발생 이후 감정 조정이 어렵거나 불면 증상이 나타나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후각 자극으로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는 정씨는 “참사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며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한번쯤 마주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