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피격 공무원’ 사건의 수사결과를 180도 뒤집은 해경에 대한 비난이 높다. 전 정권에선 ‘자진 월북’이라고 강조하더니 이번 정권에선 ‘월북 증거가 없다’고 한다. 둘 중 하나는 ‘부실 수사’였음을 자인한 것인데,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해경 안팎에서는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겨우 벗어나나 싶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해경이 또 풍파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해양경찰서는 1년9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전날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 사건을 종결했다.
이씨는 2020년 9월21일 오전 2시쯤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당직근무를 서다 실종됐는데, 다음날 오후 3시30분쯤 북한 장산곶 해역에서 발견됐으며 같은 날 오후 9시40분쯤 북한군 총격으로 숨졌다.
해경은 “이씨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군을 특정하지 못해 사건을 종결한다”며 “이씨의 월북 의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마음의 아픔을 감내했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해경의 이날 발표는 유족에 대한 사과인 동시에 애초 ‘자진 월북’으로 결론 내렸던 지난번 수사결과가 잘못됐었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다.
해경은 이씨가 숨진 뒤 2개월여 동안 세 차례 브리핑을 열어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실종 당시 신발(슬리퍼)이 선상에 남겨진 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과도한 채무에 시달려 왔던 점 △월북의사를 표명한 점 등이 월북의 근거라고 했다.
이중 ‘월북의사 표명’은 당시 국방부 감청내용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국방부는 국가 안보 이유를 들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해경이 이를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경은 특히 “이씨가 도박 빚으로 공황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했다고 판단한다”고 해 유족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유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자진 월북으로 결론 냈던 해경은 1년9개월이 흐른 뒤 수사결과를 뒤집었지만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또 국민들에게 외면 받을 수 있겠다”는 자조의 말이 해경 내부에서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경 대원은 “수사결과가 180도 뒤집어졌다는 건 전 정권에서 한 수사 또는 현 정권에서 한 수사 둘 중 하나는 부실하다는 것”이라며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해경은 ‘세월호 참사’ 때 ‘부실 구조’ 오명을 쓰고 조직이 해체되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정부였던 2014년 4월16일 탑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고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의 사망자와 미수습자가 발생했는데, 해경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해경은 2014년 11월 조직이 해체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이로부터 3년 후인 2017년 7월, 문재인정권하에서 부활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또 다시 풍파에 시달리게 됐다.
당장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 것을 비롯해 수사결과를 번복한 이유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해경의 굴곡의 역사가 하나 더 늘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또 다른 해경 대원은 “이번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조마조마하다”며 “더 이상 굴곡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