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속 아기에게서 가장 먼저 생겨나는 장기 ‘심장’. 심장은 한번 생기면 죽을 때까지 힘차게 뛰며 온몸에 혈액을 보내는 임무를 담당한다. 가끔 느리게 뛰거나 불규칙하게 뛸 수는 있어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심장이 멈춘다는 것은 곧 ‘사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장기인 만큼 심장은 흉곽에 싸여 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처럼 막대한 힘이 외부에서 가해질 때 젊은이들조차 심정지를 맞는다. 이제 비상 상황에서 심장이나 심혈관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알아놓아야 하는 게 슬픈 현실이 됐다.
심장과 심혈관 명의로 유명한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원호연 교수(47)는 1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서 뉴스1과 만나 우리 몸의 ‘엔진’ 심장의 여러가지 비밀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심장병인데 자주 체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유, 서 있는 상태에서 실신하는 이유,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는 의사로서 가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심장은 어떤 힘으로 끝없이 움직이는가.
▶자율성을 가진 근육의 움직임에 전기 자극이 더해져 심장이 뛰게 된다. 심장 자체가 하나의 근육이다. 그런데 동결절이라는 심장 위쪽 부위가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고 보이지 않는 전깃줄을 통해 심장 전체에 이를 보낸다. 이 전기에 자극받아서 심장이 뛰게 된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신호가 끊겨 심장이 멈출까봐 심장 근육에도 자율성이 부여됐다. 그래서 전기 신호가 없어도 심장은 느리지만 움직인다.
-이태원 참사로 심정지가 된 분들이 많았다. 숨쉬지 못하면 폐정지지 왜 심정지인가.
▶우리는 1분이고 2분이고 임의로 조절해 숨을 안 쉴 수 있다. 숨은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온몸에 피를 순환시켜 주는 심장은 스스로 조절할 수도 없고 멈추는 순간 결국 사망의 과정이 시작된다. 폐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심정지를 불러온다.
-쓰나미 현장 등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는 분들이 있다. 압도적인 공포 상황에서 크게 놀라면 심정지가 올 수 있나.
▶’내가 심장이 약해서 많이 놀란다’고 표현하는 분들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놀라는 것과 심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지만 본래 심장 관련 기저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이 심리적이나 육체적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심장마비나 심정지가 올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진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젊은 사람들은 심정지를 겪을 가능성이 없나. 하지만 젊은이들도 급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심정지가 일어날 일이 없다. 하지만 건강하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이상이 있었던 경우도 부검을 통해 발견되는 일이 있다. 아주 신체적으로 정상이라도 다양한 상황, 전신적 이유로도 심정지는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빠져 움직임이 없었다면 혈전이 생겨 이것이 중요 혈관을 막아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선천적 부정맥이 있었을 수도 있고 비후성심근병증 같은 것으로도 운동선수들이 갑자기 사망하기도 한다.
-체한 줄 알았는데 심장병이었던 사례들이 있다. 두 질환이 증세가 비슷한 이유가 무엇인가.
▶장기의 위치가 비슷하고 신경 역시 비슷한 곳에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심장 바로 밑에 위가 있고 심장 뒤에는 식도가 지난다. 위치가 비슷하니 서로 영향을 받고 증세도 비슷한 것이다. 이 때문에 체한 줄 알고 참다가, 식도염인 줄 알고 약만 먹다가 심근경색으로 실려오는 환자들이 실제로 꽤 많다. 뭔가 속이 불편하고, 반복되는 증상이 있다 싶으면 꼭 심장병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게 좋다.
-이태원 참사 때 서서 실신하거나 압사당한 분들이 있었다.
▶심장은 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장기로, 우리 몸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갈비뼈와 등뼈 등이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힘에는 눌리지 않는데 굉장히 심한 압박이 오면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호흡정지가 오고 심장도 영향을 받는다. 압박을 받아 폐의 압력이 높아지면 심장이 눌리는데 그러면 심장이 뿜어내야 하는 혈액의 양이 갑자기 줄어든다. 이를 심장박출량이라고 하는데 자동차 3000㏄급이 1000㏄급 기능밖에 못하는 것과 같아진다.
그러면 폐도 압박당해 호흡도 못하고 심장도 일을 제대로 못해 결국 혈압이 떨어진다. 누워 있는 상태면 혈압이 낮더라도 천천히라도 피가 뇌로 돌 텐데 서 있던 상황이라 선 채로 실신한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압사 사태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심장을 보호할 방법은.
▶주먹을 쥔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려 붙이거나 한손은 반대쪽 어깨에 올리고 다른 손은 반대쪽 팔꿈치를 잡는 자세가 있다. 이는 결국 흉강을 보호하고 숨쉴 공간을 만드는 것인데, 사실 그렇다 해도 아주 극심한 외부 압력이 오면 사람의 힘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어떤 수단이라도 써봐야 할 것이다. 넘어지고 깔리신 분들 중에서도 어떤 분은 살아남고 어떤 분은 돌아가셨는데 살아남으신 분들은 살짝이라도 숨쉬기 용이한 몸의 각도였거나 1㎝라도 숨쉴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위중한 병을 다루기에 평소 죽음을 많이 보실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죽음에는 적응이 안 된다. 어떤 분은 상태가 안 좋아서 돌아가실 것 같았는데 잘 버텨서 소생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잘 회복 중에도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도 있다. 그래서 의학적인 자세는 아니지만, 사람의 명은 사람(의사)이 아니라 어느 정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만큼 죽음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적응이 잘 안된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것이 굉장히 한순간이고 종이 한장 차이였다.
-누구나 죽는다.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젊었을 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고 남은 사람들은 어떡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면서 결국 인생 사이클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누구나 죽고, 나 또한 언젠가는 죽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만약에 죽게 되면 그냥 주변 사람들이 크게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마음이 있다. 그동안 잘 놀았고 잘 지냈으면 된 거지, 하는. 다만 비교적 젊은 나이 말고 좀더 나이가 든 상태에서 갔으면 하는 정도의 희망은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