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의 진원지를 ‘박지원 게이트’로 규정짓고 역공을 본격화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정치공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넘어, 사인(私人)에게 국가기밀을 유출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해 ‘판 흔들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하태경 의원은 14일 페이스북에 “박지원 원장, 국회 정보위원회에 진술한 대외비 내용도 조성은에게 다 털어놓는다”며 “박 원장이 조성은에게 국가기밀 유출한 건 없는지도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는 지난 2월15일 페이스북에 “설이라며 뵙고 어제 다섯 시간 넘게 나눴던 말씀이 생각나서 엄청 웃었네. 머리 꼭대기에 계시던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타인의 말을 전하듯 ‘언더바'(_) 기호를 넣어 “나는 별말 안 했다, 다 공개하면 딴 건 모르겠고 이혼할 사람들 많을 거다, 고만 전하라 했다”, “날던 새가 떨어지던 시절을 넘어 내가 걸어가도 새가 안날긴 하던데”라고 적었다.
올해 2월은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논란으로 여야가 격돌하던 시기다. 당시 박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야권에서는 당시 조씨가 박 원장을 만나 5시간 동안 관련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조씨가 언급한 “공개하면 이혼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문장도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하 의원은 “이 말은 올 2월쯤 국회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한 말”이라며 “역대 정부들의 국정원이 정치인 불법사찰했는데 그 내용들이 공개되면 이혼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박 원장의 표현이 워낙 하드코어라서 당시 정보위가 끝난 뒤 이 내용은 브리핑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비슷한 시기 조성은 페이스북에 똑같은 내용이 있다. 박 원장에게 듣지 않았으면 쓰지 못할 내용”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박 원장이 국정원 대외기밀성 내용을 조성은과 공유했음을 짐작케 한다”며 “이뿐이겠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박 원장이 조성은에게 유출한 대외비 내용이 더 있는지 즉각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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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2월15일 올린 페이스북 글. © 뉴스1 |
국민의힘은 ‘박지원-조성은’ 관계를 연결고리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박 원장이 고발사주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토대로 ‘제보사주 의혹’을 띄우고, 한 발 나아가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까지 제기해 국면 전환을 꾀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은 야당이 ‘윤석열’에 대응하는 인물로 ‘박지원’을 상정하고 고발 사주 의혹의 본질을 여권의 정치공작으로 규정해 정국을 돌파하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정원장의 국가기밀 유출 의혹이 확전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리스크’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연일 박 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원장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의 경우 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우리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과거 사례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본다”며 “박 원장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정원법 위반의 주체는 박 원장”이라며 “지금은 해명이 매우 미온적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국정원의 존립 자체를 흔든다. 그러면 그 수장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공명선거추진단장도 조씨가 8월11일 박 원장을 만나기 직전 이른바 ‘손준성 보냄’ 이미지 파일 110여장을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모두 내려받은 점을 문제 삼으면서 박 원장의 ‘개입설’에 무게를 실었다.
김 단장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남) 전날 조씨가 100건 넘는 106건, 110건 이런 식으로 자기 스마트폰에서 관련 자료를 전부 출력했다. 그것도 밤늦게”라며 “그 다음날 역사와 대화를 했는데, 정작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그럼 두 분이 팔씨름하고 놀았느냐”고 했다.
김 단장은 “처음 보도 시점이나 보도할 때 윤석열을 어떻게 끌고 들어가느냐, 그 모든 것이 박지원 원장이 결부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뉴스버스에 파일을 제공해서 보도하게 만드는 데는 박지원 국정원장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박 원장의 진상조사를 위한 국회 정보위 소집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정보위 소속 국민의힘 위원들은 전날(13일) 공동 성명서를 통해 “‘박지원 정치공작 의혹’ 진상조사를 위한 국회 정보위 소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국정원 불법사찰 내용은 기밀이고 국회 정보위원들도 대외공개를 하지 않은 것인데 조씨가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단서”라며 “더 (유출)한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는 수상함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은 박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입장을 듣지 못했다. 박 원장은 전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발 사주 의혹 개입설에 대해 “야당이 헛다리를 짚은 것”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