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 정지윤(20)에게 2021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그의 소속팀 현대건설은 2020-21시즌을 11승19패(승점 34) 꼴찌로 마쳤다. 이어 막내로 도쿄 올림픽에 나서 ‘4강 신화’를 경험했고, 새 시즌엔 센터에서 레프트로 포지션을 바꾸며 눈물을 쏟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21-22시즌의 반환점을 돈 2021년의 막바지, 현대건설은 12연승 신기록과 함께 17승1패(승점 51)라는 압도적 기록으로 선두를 질주 중이다.
‘잘 나가는’ 현대건설과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지윤은 뉴스1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 성적이 안 좋은 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훈련장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 이유를 뭐라고 딱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명 한 명의 준비 자세에서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뭔가 잘 될 것 같은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이 좋은데 다들 안주하지 않는다. (시즌 전의) 분위기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고 다들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연승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지윤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개막에 앞서 열린 KOVO컵부터 레프트로 변신, 새로운 포지션 도전에 나섰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센터로는 지난 3년 동안 내내 주전이었고 도쿄 올림픽까지 다녀올 만큼 뛰어난 재능을 입증했지만 레프트로 나선 뒤엔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버거웠다.
특히 취약한 리시브가 고민이었다. 상대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고, 정지윤은 투입될 때마다 상대의 타깃이 됐다. KOVO컵에선 상대의 집중 공격을 막지 못하고 무너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회 MVP를 탔을 만큼 두루 뛰어났으나 리시브만큼은 여전히 그의 숙제였다.

이전 포지션에서 펄펄 날았던 그에겐 매 경기 ‘구멍’ 취급을 받는 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성공이 보장된 길을 두고 맞이하는 난관은 더욱 괴롭다. 잘 아는 길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러면 편하다. 하지만 그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레프트로 성공하는 게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초반까지만 해도 그냥 센터로 돌아갈까 하는 미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정말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았다.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레프트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리시브를 받을 때) 처음엔 많이 긴장했다. 잘 안 되는 걸 알기에 더 힘이 들어갔다”고 밝힌 뒤 “특히 눈물 흘렸던 KGC인삼공사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소위 ‘멘붕’이 왔었다. 하지만 울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서러워서 계속 눈물이 나는데, 신기하게도 울면 울수록 속이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레프트 정지윤’은 더욱 강한 책임감을 갖고 훈련에 매진,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정지윤은 레프트에서 17경기 120득점, 리시브 효율 23.26을 기록하며 점점 자리를 잡고 있다.
덕분에 현대건설은 ‘조커’로 나서는 정지윤의 화끈한 공격력을 앞세워 승부처마다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2020-21시즌 꼴찌부터, 도쿄 올림픽의 경험, 2021-22시즌 포지션 변화와 함께 맞이한 선두 질주까지. 그에게 2021년은 참 많은 일이 벌어진 한 해였다. 그런 그에게 2021년을 빨리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하고 싶은지, 아니면 2021년이 더 길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었다.
이전까지 논리정연하게 대답하던 그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잠시 시간을 달라”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어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2021년은 정말 얻은 게 많다. 도쿄 올림픽에서 4강에 오르는 영광도 누렸고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도 많은 기회를 받았다. 포지션을 바꾸면서 더 좋은 배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도 이뤄가고 있다”면서 “한 해를 되짚는 질문을 받은 뒤 생각을 되짚는 지금 이 순간마저 기분이 좋다. 2021년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도 먹고 싶지 않다”면서 웃었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몇 일 후면 싫든 좋든 2021년은 가고, 정지윤은 물론 우리 모두가 2022년을 맞이해야 한다.
그는 “올해를 보내는 게 아쉽지만, 경험한 게 많은 2021년을 보냈으니 2022년엔 더 좋은 시간들이 오지 않겠느냐”라며 “프로에 와서 아직 봄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지금 선두인데, 내년엔 봄배구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새해엔 올해보다 더 발전하고 싶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겐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고, 내가 레프트에서 안 될거라고 예단하는 사람들에겐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다부진 목소리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