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7일 정부가 꾸준히 미국 정부를 설득할 경우 금년 상반기 중에 북미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날 ‘4·27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 3주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모색’ 학술회의에서 축사를 통해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으며, 북미관계도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협상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금년 상반기 중에 북미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을 설득하기보다 우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성안 중인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회담에 나올 수 있도록 (대북정책) 틀이 짜여지도록 권고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학술회의에 참석한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정 의장의 발언에 동의하며 북한을 유인해 내는 전략은 ‘선미후북'(先美後北)전략이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관여와 북한의 유화적 호응이 나올 때 ‘2차 평화 전환’이 이뤄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이나 2차 평화전환은 어려운 상황으로 보여진다”면서 “북한의 고립주의 노선이 유지될 경우 한국이 남북관계 끈을 잃은 상황에서 과거처럼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현재는 워싱턴(미국)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워싱턴을 통해 평양(북한)을 유인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토론회에서는 3년 전 판문점 선언의 합의 정신이 지속되고, 그 합의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해야 할 일을 ‘역할론 차원’에서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북미관계를 우선적으로 추동해 남북관계를 이끌려고 하는 남북관계의 ‘북미 종속화’ 현상이 강해질수록 한국의 주도력이나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미가 해야 할 일을 비핵화·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 등의 내용으로, 남북이 해야 할 일을 교류협력·남북 간 군비통제 등의 내용으로 지나치게 선을 그어 구분해왔다”면서 “이런 역할론 때문에 남북미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남북관계의 주도성이나 설계 능력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미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미가 하나의 코어(틀)가 돼 한반도 상호안전보장 체제를 논의 할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이 필요하다”면서 “이에 남북미가 합의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남북·북미·한미가 세부적으로 진전시켜 나가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존 우리 정부가 제재압박, 북핵 불법성 비난, 대화와 설득, 경제지원, 신뢰구축 등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음이 ‘전략적 과오’였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북한은 매우 강한 핵무장 동기를 갖고 있어 일반적인 비핵화 해법이 여간해 통하지 않는다”면서 “과거 비핵화 노력이 모두 실패 한 것은 우리의 제재 압박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 핵무장의 동기, 즉 핵무장이 필요한 안보적·정치적 동기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새로운 비핵화 전략의 원칙으로서 기존 국제법적·규범적 접근보다는 ‘안보 대 안보’의 교환과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한미도 강력한 제재압박을 기본으로 하면서 북한이 거부하기 어려운 유인책도 동원해 북미관계 정상화, 코로나19 방역과 보건물자 확보, 경제발전, 제재 해제, 국제지위 제고 등의 유인책을 상응조치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한용섭 국방대 명예교수는 2018년 9·19 군사합의의 문제점과 보완 사항을 지적하며 △남북 군사공동위 설치운영 및 남북 군사대화채널 제도화 △군사적 신뢰구축의 제도화 및 투명성 조치 △비무장지대 내의 GP 완전 철수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추진 △남북 민군 합동 공동검증위원회 설치 등을 조언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한·미동맹의 역할과 기능 등 조정을 준비하면서 다자안보협력 구축을 위해 이를 서두르기보다는 동북아 정세와 안보 구도 변화에 상응해 한·미동맹을 조정하면서 다자안보협력도 염두에 둬 한국의 자주성을 점점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