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일촉즉발로 흐르는 전쟁 위기감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우리나라에 물가 상승의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에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안그래도 높은 국내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에 대한 소비자 전망인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월 기준 2.7%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 2019년 8월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인 2% 이하로 떨어진 뒤 줄곧 1%대를 맴돌았던 기대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2월 2.0%를 기록한 뒤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2.7%까지 오른 뒤 12월과 올해 1월에 걸쳐 2.6%로 낮아지는 듯했다가 2월에는 다시 2.7%로 올랐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들이 예·적금을 들거나 투자할 때, 경영계획을 세울 때 알게 모르게 앞으로의 물가 상승률을 예상해 이를 의사 결정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상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시차를 두고 다시 물가에 반영된다. 임금과 물가 상승이 나선형의 구조를 타고 끊임없이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으로 작성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달 14일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은 “지난해에는 기저효과와 공급병목 현상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견해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며 “이제는 공급병목 현상이 구조화·장기화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기대의 확산으로 광범위한 물가상승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범은 국제유가다. 한은에 따르면 향후 1년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으로 석유류 제품(61.0%)이 꼽혔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 상승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미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14일 기준 배럴당 95.4달러로 치솟았다.
군사충돌이 격화하면 국제유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씨티은행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우크라이나를 강타할 경우 국제유가가 10%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으며, JP모건은 배럴당 120달러를 가볍게 넘는 것은 물론 150달러까지도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이미 위험수위에 달한 가운데 국제유가가 인플레이션의 불쏘시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터지면 국제유가를 포함해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며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