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부회장이 유럽 출장에서 돌아와 첫 출근한 날인 20일,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등 삼성전자와 전자 계열사 사장단 25명이 한데 모여 7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발 복합위기 그림자가 한국 경제에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글로벌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온 이 부회장이 제시한 △기술 △우수인재 △유연한 조직문화 등 3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복합위기 대응 방안 마련에 발빠르게 나선 것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귀국한 지난 18일 “좋은 사람 데려오고,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겠다”며 “그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강조했다.
전쟁과 공급망 붕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원자잿값 급등 등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을 우수인재와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5년간 450조원 투자계획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1일부터 주요 경영진과 임원, 해외 법인장이 참석하는 상반기 경영전략회의를 부문별로 열고 세부 계획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은 20일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3시 이후까지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 주재로 사장단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사장단 회의에는 한 부회장과 경 대표를 비롯해 최윤호 삼성SDI 사장·황성우 삼성SDS 사장·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등 25명이 참석했다.
사장단들은 △글로벌 시장 현황 및 전망 △사업 부문별 리스크 요인 점검 △전략사업 및 미래 먹거리 육성 계획 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충격, IT제품 수요 급감 등 글로벌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는 한편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 개발, 공급망 안정성 강화, 재정건전성 확보 등의 대응책 등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 관련 산업과 기술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공급망 위기와 운송비·원가 상승,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 등 복합 위기 상황인 점을 반영했다.
앞서 이 부회장도 “한국에선 못 느꼈는데 유럽에 가니까 러시아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더 느껴졌다”며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동과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삼성도 경쟁사들의 추격과 시장의 불확실성 확대에 노출돼 있다. ‘효자 상품’이었던 스마트폰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21%로, 5년 전인 2016년 수준에 머물러 있고, ‘글로벌 1위’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IT산업 호황기가 끝나면서 성장이 주춤하다. ‘세계 1위’ 목표를 세운 팹리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도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재계에서는 삼성 각 계열사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국제 정세와 산업 환경,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의 흐름을 읽고, 특히 새로운 먹거리를 잘 준비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르게 변화하고 더 과감하게 도전할 것을 주문한 셈이다.

특히 이 부회장이 강조한 인재 육성과 기술 경쟁력 확보, 유연한 조직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사장단 회의에서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 개발’ 관련 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계를 돌파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또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신시장을 개척해 미래를 준비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각 관계사는 이날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재점검하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마련해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기술로 한계를 돌파해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 확보도 삼성의 미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이날 회의도 ‘삼성 인재 양성’의 메카로 불리는 인력개발원에서 열렸다.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인재제일’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982년 설립한 곳이다.
재계에서는 전자 관계사 사장단회의를 인개원에서 연 것은 그 자체로 ‘초일류 도약’을 위해서는 ‘우수인재’가 핵심이며, 새롭게 조직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사장단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문화 구축 및 우수인재 확보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재를 확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꿈을 꾸며, 미래에 도전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조직문화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삼성은 지난해 새로운 인사제도와 조직문화 개선을 골자로 하는 ‘미래지향 인사제도’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상생 생태계 활성화와 투자,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주요한 의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더라도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상생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 기업의 사회적 역할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논의됐다.
이날 사장단 회의 내용은 오는 21일부터 열리는 상반기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전파되고,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세부 전략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기술을 통한 미래 준비’를 강조해 온 만큼, 삼성이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 준하는 강도 높은 혁신과 미래 먹거리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뉴 삼성’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