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업들이 정관계 인사들을 잇따라 영입하는 등 대관(對官) 인력 확보에 한창이다. 코로나19 이후 영업 환경이 급변하고 기업 규제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행정부·국회와 원활하게 소통해 정부 정책과 관련 입법·규제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옛 보좌진이었던 정문일씨를 상생협력센터 소속 전문위원(상무)으로 선임했다. 상생협력센터는 삼성전자 대관 업무 임직원들이 속한 조직이다.
정 전문위원은 과거 김 총리가 경기 군포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비서관으로 함께했던 인연이 있다. 당시 17대·18대 국회의원 임기 연속으로 김 총리를 보좌하는 등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S도 최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인사를 부장급으로 영입했다.
LG전자도 정당 출신 인사를 대관으로 영입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18대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던 최모씨와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보좌관(20대·21대)이었던 김모씨는 최근 LG전자 대관 조직 직원으로 영입됐다. LG전자는 대관 조직 강화를 위해 정치권 외에도 경찰 출신 인사까지 다수 채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대(對)국회 업무를 강화하는 건 산업계에 대한 입법부의 규제가 갈수록 늘어나는 최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규제 관련 법안은 총 3919건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1313건)보다 약 3배 많다. 특히 21대 국회에선 규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노조법 개정안 등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법안들이 통과되기도 했다.
관료 출신 인사를 영입해 대관 조직을 강화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SK그룹은 박훈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기술과장을 대외협력총괄 담당 임원(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박 부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재직 당시 동기(행시 44회) 중 가장 먼저 과장급으로 승진했던 인재로 알려졌다. 박 부사장의 소속사는 SK하이닉스지만,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대관 조직에서 근무하면서 반도체·전자와 그룹 사업 재편 등 그룹 내 여러 현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재계에선 정부 정책과 국회 입법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 업무의 특성상 정당·관료 출신 인사의 영입과 대관 조직 강화는 늘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단순히 로비가 아니라 기업의 목소리를 행정부·입법부에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건 기업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며 “이들과 꾸준한 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항상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