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한때 굉장히 잘했다고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향후에) 잘못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도체 한파’ 속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사뭇 비장한 모습이었다. 초격차를 통해 기술을 주도하던 때와, 수년간 반도체 부문에만 수조원을 벌던 과거의 영광도 잊을 것을 주문했다.
대신 위기 돌파를 위해 ‘혁신’과 ‘변화’를 강조했다. 꾸준히 변화를 이어가야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경 사장은 지난 1일 DS경영방침 설명회에서 미국 저비용항공사(LCC)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반면교사’ 사례로 제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혁신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해 겨울 대규모 결항 사태로 곤욕을 치렀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전후해 미국 전역에 폭설, 강풍 등 악천후가 이어지며 항공편 70%를 취소했다. 일주일간 약 1만6000편 이상이 결항되는 사태로 손실만 8억달러(약 1조원)에 달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대규모 결항 사태는 낙후된 배치 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노후화된 운영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관련 문제가 평소에도 제기됐지만, 경영진은 교체는커녕 제대로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
경 사장은 “변화에 소홀히 대응하며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 번의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혁신기업도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현실에 안주하면 언제든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도 1993년 메모리반도체 분야 1위를 달성하며 ‘반도체 초격차’에 나선 이후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다만 냉혹한 반도체 한파에 지난 4분기 이익은 2700억원으로, 1년 사이 97%나 쪼그라들었다. 경쟁사의 추격도 거세다.
시스템반도체 역시 이재용 회장이 파운드리를 포함해 2030년 세계 1위 달성을 선언했지만, 녹록지 않다. 파운드리만 하더라도 글로벌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 격차가 크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60%지만, 삼성전자는 13%에 그쳤다.
삼성전자가 믿을 구석은 기술이다. 이재용 회장도, 경 사장도 ‘기술 초격차’를 통한 시장 선도를 강조했다.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파운드리 3나노 공정이 대표적이다.
경 사장은 TSMC에 뒤쳐진 파운드리 분야의 성장을 위해 세계적인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법을 참고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결론을 미리 상정하지 않은 채 밀고나가는 방식이다.
그는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하루에 20쪽씩 매일 꾸준하게 일단 써가면서 구상하고 발전시킨다”며 “물론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지만 과감한 목표를 세운뒤 하나씩 추진하며 방법을 찾아나갈 때 혁신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SDC)로부터 20조원을 빌린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단기 차입한 것은 이례적으로, 반도체 투자를 이어가기 위한 결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