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형님 집으로 갑시다.”
A씨(48)는 지난 3월19일 새벽 1시쯤 방 안에서 조용히 자고 있던 어머니 B씨를 갑자기 깨워 일으켰다.
한밤중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그것도 평소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는 배 다른 형의 집에 가자는 말은 상당히 의아스러웠지만 치매 환자인 B씨는 아들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B씨는 아들의 손이 이끄는 대로 아들 차 조수석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 조금 전 아들이 자신과의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였다.
A씨가 B씨와 함께 찾은 곳은 전날 차를 몰고 한 차례 답사를 했던 제주시 애월읍 애월해안로의 한 펜션 주차장이었다.
이 곳에서 10여 분간 차를 세웠던 A씨는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중앙선 너머 11m 높이의 해안절벽으로 돌진한 뒤 그대로 추락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A씨는 혼자 살아남고 말았다. 자신과 어머니 모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만 현장에서 사망했다.
A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친 몸을 이끌고 범행 직전 잠시 정차했던 펜션으로 가 문을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했다. 이 때가 새벽 4시쯤이었다. 이후 A씨는 펜션 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결국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은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존속살해 범행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범행 직전 남긴 유서에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이 담겨 있는 데다 살해 방식이 어머니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방식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A씨의 아내는 “사업이 어려워지고 시어머니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니까 남편이 ‘집에 있는 게 지옥 같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했었다”고도 했었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은 것”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쳤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고, 피해자 사망이라는 무거운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지난 7월21일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여러 사정이 한꺼번에 악화되자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그 기회에 치매 증상이 악화된 피해자를 함께 살해해 주변의 고통을 덜어 주자는 매우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한이나 분노, 재산적 탐욕에 의한 존속살해와 어느 정도 다르게 볼 여지가 있는 점, 피고인이 모친을 살해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아내와 친척 등 주변 여러 사람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A씨는 형량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재판장 이경훈 부장판사)는 지난달 9일 “이 사건은 모친을 살해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 결과도 무거우며 도덕적으로도 비난 가능성이 높은 데다 특히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후 A씨가 지난달 14일 광주고법에 상소포기서를 제출하면서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