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가 대(對)러 제재에 나선 국가들을 ‘비우호국가’로 지정, 외화 채무를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 거래 ‘보복’에 나섰다. 루블의 가치가 연일 떨어지고 있는 만큼 수출 대금을 받아야 하는 국내기업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8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비우호국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기업이 지고 있는 해외 채무를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경제제재에 러시아가 ‘역 제재’를 가하는 셈이다.
이날 한때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로 보면 루블은 1달러당 155루블에 거래되면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는 달러당 70~80루블 사이에서 거래된 점을 볼 때 가치가 뚝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정부령에 따르면 월 1000만루블(8850만원)이 넘는 외화 채무 상환의 경우 루블화로 상환이 가능하다. 채무자는 러시아 은행에 채무자 명의로 된 특별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로 러시아 중앙은행 환율에 따른 외화 채무액의 루블화 환산액 송금을 요청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의 이같은 규정이 사실상 ‘갚지 않겠다’는 상환 의무 불이행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들에게 경제 제재를 가한 비우호국가들을 향해 ‘역 제재’에 나선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러시아의 제재가) 무역이나 상거래에는 해당하지 않고 대출과 같은 채무에만 적용된다”면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러시아가 수출기업에 대한 제재도 추가할지 관련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특히 러시아 기업에게서 대금을 받아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되는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산업계 피해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현지에서 루블화로 거래해 온 기업들은 가치 폭락에 따른 환 손실을 본데다, 달러로 받아야 하는 수출대금까지 루블화로 받게 될 지경에 놓이면서 피해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국내 중소 수출기업들의 피해도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KOTRA(코트라)의 ‘무역투자24’와 무역협회 등에 접수된 피해 사례에서 중소 수출기업들은 미수금 문제와 더불어 현지 업체들이 루블화로 대금을 결제하겠다고 나서면서 환차손으로 발생할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다 루블화 가치가 지속 하락하며 러시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에 놓일 경우, 국내 기업들이 수출대금을 떼일 가능성도 존재하는 만큼 대응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긴급 민관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러시아 정부의 비우호국가 지정 등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여 본부장은 “러시아 정부의 비우호국가 지정으로 인해 현지 진출기업과 수출기업의 경영 애로가 현실화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면서 “산업부는 실물경제대책본부 등을 중심으로 관련 기관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