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23차 한·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통해서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정은 우리 생존과 번영에 직결된다”며 “난 아세안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연대·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날 소개한 우리 정부의 인·태 전략은 △자유 △평화 △번영의 ‘3대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원칙’을 통해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역내 국가들이 서로 권익을 존중하고 공동 이익을 모색해가는 조화로운 역내 질서를 촉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결코 용인해선 안 될 것”이라며 “규칙에 기반을 둬 분쟁과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원칙이 지켜지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그간 미국 등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해화 시도와 같은 확장정책을 비판할 때 써온 외교적 수사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간의 첫 한미정상회담 당시 우리 자체적인 ‘인도·태평양 전략 프레임워크’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이래로 “우리의 인·태 전략은 특정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날 소개한 우리 정부의 인·태 전략도 큰 틀에선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측면이 커 보인다.
한국판 인·태 전략의 세부 성안 작업이 외교부 내 북미국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사실 또한 이를 방증해준다.
윤 대통령은 또 이날 회의에서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통해 번영하는 인·태 지역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공급망 회복력 제고를 통한 경제안보 강화 △협력적·포용적 경제·기술 생태계 조성 등을 추진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역시 미 정부가 중국과의 전 방위 패권경쟁을 벌이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주요 동맹·우방국들과의 기술동맹 실현을 모색하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앞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인·태 전략 연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국과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는 올 5월 출범 이후 ‘한미동맹 강화·발전’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미국과의 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데 주력해왔다.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립 멤버로 참여한 사실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당국은 이 같은 움직임이 자국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아세안 주요국이 중국과 정치·외교·군사적 갈등을 빚으면서도 경제적으론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의식한 듯, “내가 추진해가고자 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협력을 목표로 하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과 결코 다르지 않다”며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아세안 중심성’과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을 확고히 지지하면서 아세안과의 협력을 심화, 발전시켜가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5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포함돼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오는 13일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열릴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우리 정부가 마련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그 연계·협력을 모색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