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기차 생산지역에 따라 차별적 조항을 담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 수정을 위한 ‘긍정적’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에도 적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윤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 기업들의 미국 경제 기여를 고려해 IRA 이행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앞서 지난 10월 윤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열린 마음으로 협의하겠다”는 메시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기존의 “IRA 관련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입장과 비교할 때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한미 간 미국의 인플레감축법에 관한 협의 채널이 긴밀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지난 10월 바이든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IRA 관련 미국 측의 진정성 있는 협의 의지를 확인해 주었다”고 반색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미국이 발효한 IRA는 우리나라에서 ‘전기차 보조금 차별법’으로 불린다. 미국이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등의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법안이 발효된 8월17일부터 자국 내 신형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000달러 보조금을 주던 혜택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에만 적용하고 있다. 또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된 핵심광물이 특정 비율 이상(2023년 40%→2027년 80%)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차 업계에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새로운 밑그림을 구상하는 등 대응 시나리오 구상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만큼 IRA가 현지 전기차 판매에 상당히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신공장 건설 전까지 생산 모델을 늘리고, 기아는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시기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중국산 광물 의존도가 높은 편이기에 IRA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배터리 핵심 광물인 리튬은 58%, 코발트는 64%, 흑연은 7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우리 배터리 업계도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 FTA를 맺은 호주, 캐나다 등 국가들에서 배터리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IRA 개정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우리 업계를 비롯해 정부에서도 향후 세부규칙 마련 및 시행령 등의 해법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특히 정부는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IRA와 관련해 실무 협상에 나서고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에도 제4차 IRA 정부합동대책반을 개최하고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선 정부는 내달 미 재무부가 마련할 예정인 IRA 세부 시행 규정에서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나쁜 신호는 아닌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정부가) 다 됐다. 마무리 됐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측과 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조만간 또 예정되어 있다.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바이든 대통령의 IRA 관련 언급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시그널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배려를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두 차례나 밝혔다는 이유에서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판단할 부분은 배려를 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일 수 있고, 대통령이 행정부의 범위 안에서 고려하겠다는 것을 시사한 만큼 긍정적”이라며 “정부도 한국에게 유리할 수 있는 법 테두리내에서 시행령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 교수는 이번 기회를 활용해 새 정부가 미 행정부와의 유기적인 대화를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다른 산업에도 유사한 조치가 발동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기에 미국과 대화를 잘 하는 것이 다른 산업에 대한 조치에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