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이 한국군 장병 55만 명에게 백신을 제공한다는 내용과 함께 한미 간 백신 파트너십을 맺기로 한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으로선 백신 물량 확보가 중요한 만큼 ‘한미 백신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맺었지만, 미국은 대중견제를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30일 ‘한미정상회담 주요 내용 및 시사점’에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코로나19 발병 기원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 평가·분석’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 역시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글로벌 보건협력에 대한 합의는 중국 견제의 목적을 내비친 것”이라며 “향후 코로나19 대응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정밀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재 미중 갈등은 ‘백신 외교전’으로 상황이 번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최대 8000만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다른나라에 지원키로 했고 중국은 일찌감치 자국산 백신인 시노팜·시노백을 동남아시아, 남미, 중동 일부에 지원하고 있다.
앞서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자국 내 백신 접종을 우선으로 하고 지식재산권 면제 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백신 이기주의’라는 비판까지 받아왔다. 최근 국내 접종률이 높아지고 상황이 개선돼 백신 여분이 발생하자 백신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반면 중국은 서구 국가들과 달리 초기부터 자국내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개발도상국에도 적극적인 백신 지원을 해 왔다. 자국산 백신의 효능은 떨어지지만 이러한 적극적 ‘백신외교’를 통해 국가적 이미지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 ‘백신 외교’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중국을 코로나19 발원국으로 명확히 인식시키고 코로나19 백신을 다양한 국가들에 공급하면서 각 국가들에 보여왔던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모습이다.
미국은 백신허브 또는 백신공급국으로 ‘한국’을 지정해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백신을 공급하려는 속내가 있었고, 우리 정부는 백신허브를 통해 우리 물량부족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현재 정부는 미국과의 백신 파트너십을 통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백신 허브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동맹국 미국과 최대교역국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던 한국으로선 난감한 상황이 됐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지원, 쿼드와의 협력, 대만 명기 등으로 미국에 밀착했단 평가가 나오는 와중에 미중 백신 외교전에서도 미국과 연합하게 된 상황이다.
김진호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과 백신을 적극 협력한다면 중국과는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안보 문제보다는 앞으론 백신문제가 더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미 반도체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은 시작했고 백신에 대해 중국 영향력 강화를 막고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며 “당분간 백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