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itedHealthcare CEO 브라이언 톰슨Brian Thompson의 사망 사건 이후 의료보험 업계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금 청구 거부와 주별 보장 내용 불일치 등으로 인한 정책 가입자들의 정서적 부담을 지적했다.
12월 20일 에스닉미디어서비스(EMS)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패널들은 공공 신뢰 회복을 위한 시스템적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투명성 개선, 이의 제기 절차 간소화, 사전 승인 장벽 완화 등이 주요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또한 환자와 의사가 겪는 행정적 부담을 줄이고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개혁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의료보험 체계의 불균형, 환자 불만 고조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 캐서린 헴프스테드 박사Dr. Katherine Hempstead는 “건강보험개혁법(ACA, 오바마케어)으로 보험 접근성은 확대됐지만, 복잡한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비만 치료제 보험 적용 중단 사례는 주마다 다른 의료보험 시스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시간주 블루크로스블루실드가 비만 치료제 ‘웨고비(Wagobe)’ 보험 적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해당 약물을 사용하던 환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햄프스테드 박사는 “우리 재단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보면, 체중 감량 약물에 대한 보험 적용 규정이 주마다, 보험사마다 제각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주 지역과 가입한 보험에 따라 생명을 바꿀 수 있는 약물에 대한 접근성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들에게 좌절감과 불공정함을 안겨주고 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 단일 규정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의료보험 재정 구조의 다양성을 지적한다. 보험 가입 유형에 따라 보장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현 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생식 보건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햄프스테드 박사는 “낙태권과 관련해 주마다 규정이 다르다 보니, 어떤 주에서는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의료보험사들의 대형화, 기업화 추세도 환자 불만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주주 이익 중심의 기업 행태가 강화되면서 보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영리 의료보험사들조차 영리 기업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병원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치료 옵션 확대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보험 체계와 접근성 격차로 인해 환자들의 불만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햄프스테드 박사는 보다 공정하고 일관된 의료보험 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 있다.
AI 의료보험 심사,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 딜레마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에서 보험금 청구 거부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환자들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피츠버그 대학University of Pittsburgh의 미란다 야버 교수(Dr. Miranda Yaver)는 최근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를 통해 발간 예정인 저서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야버 교수는 전국 단위의 설문조사와 환자, 의사 등 의료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험금 청구 거부의 실태와 그 영향을 분석했다.
야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36%가 최소 한 번 이상 보험 적용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60%는 여러 차례 거부를 경험했다. 카이저 가족재단의 조사에서는 보험금 청구의 약 17%가 거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소외계층이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며 “의료보험사들이 이윤 추구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보험금 청구 과정의 자동화가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같은 대규모 의료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마다 의료 접근성 확대와 비용 억제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왔다,” 야버 교수는 설명했다. “그 결과로 도입된 것이 사전 승인이나 단계적 치료와 같은 다양한 이용 관리 도구들입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거부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는 않지만, 그 영향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대응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야버 교수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평균적인 미국 성인의 독해 능력은 8학년 수준인데 반해, 의료 관련 문서는 보통 11-12학년 수준으로 작성됩니다.”
이러한 복잡성은 건강 정보 이해능력(헬스 리터러시)의 차이를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야버 교수는 “백인이나 고학력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헬스 리터러시를 가진 반면, 흑인, 히스패닉, 저소득층 등은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보험금 청구 심사가 증가하고 있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야버 교수는 “AI를 통한 대량 처리로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오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유나이티드헬스케어, 시그나, 휴마나 등 주요 보험사들이 AI 심사 관련 집단소송에 직면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야버 교수는 “AI 도구가 잘 작동한다면 신속한 청구 처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특히 취약계층에게 불안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효율성 향상과 형평성 보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의원, 환자 복지 우선 AI 알고리즘 규제 법안 발의
이에 대한 대응으로 조시 베커Josh Becker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의사 결정법(SB 1120 Physicians Make Decisions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료보험 청구 과정에서 AI 결정에 대한 면허 의사의 감독을 의무화하여, 환자 치료에 인간적 요소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베커 의원은 “오늘날 빠르게 진화하는 의료 환경에서 보험 결정에 AI 사용이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가 질병 탐지나 영상 판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적절한 의료 결정을 보장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베커 의원에 따르면, 건강보험사들은 효율성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AI 기반 알고리즘을 사용해 보험금 청구와 사전 승인 요청을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11월, 미국 최대 보험사가 자회사인 NaviHealth의 컴퓨터 알고리즘이 요양원의 메디케어 수혜자들의 청구를 “체계적으로 거부했다”는 혐의로 집단소송에 직면했다.
또 다른 대형 보험사 Cigna는 의사들이 환자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즉시 의료적 근거로 청구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기업 문서와 전직 Cigna 임원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2022년 2개월 동안 Cigna 의사들은 이 방식을 사용해 30만 건 이상의 지급 요청을 거부했으며, 각 사례당 평균 1.2초만을 할애했다고 한다.
베커 의원은 “이러한 보고서와 전국의 소송들은 AI 시스템이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부당하게 거부한 문제적 사례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에 항소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의료 치료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응해 베커 의원은 캘리포니아 의사협회 및 의사들과 협력하여 ‘의사 결정법(Physicians Make Decisions Act)’이라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은 건강보험 과정에서 AI 알고리즘이 내린 결정을 면허를 가진 의사가 감독하도록 요구한다.
베커 의원은 “우리는 인간의 요소가 필요하다”며 “이 법안은 자동화된 프로세스보다 환자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의료 결정을 보장함으로써 우려에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달리 미국만이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라며 “다른 나라들은 의사들이 권고를 하고 그에 따라 지불을 받는다. 그들은 우리보다 평균적으로 절반 정도의 비용을 의료에 지출하면서도 일반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보고한다”고 지적했다.
베커 의원은 “모든 의료비 지출의 약 30%가 이러한 종류의 청구 협상, 청구 관리 과정에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의사에게 지불하거나 치료를 제공하는 데 쓰이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커 의원은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부당한 청구 거부와 보험사의 막대한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의사 결정법은 환자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의사 결정 과정에 인간의 전문성을 통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커 의원은 “1월 5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안이 의료 시스템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행정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