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미국과 중국의 판매 성적표가 엇갈렸다. 미국에서는 역대 최대 판매를 경신한 반면 중국에서는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전략의 차이가 크다는 평이다. 신차 출시와 현지 대응 등이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올 1~8월 미국 시장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9% 증가한 106만3907대(현대차 56만1288대+기아 50만2619대)이다. 현대차 실적에 포함된 제네시스는 총 2만9453대가 팔려 같은 기간 190% 늘어났다.
동남아 델타 변이 확산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8월 판매는 주춤했지만, 역대급 판매 성적이다. 기아 텔루라이드를 비롯한 일부 차량의 경우, 웃돈을 받고 팔릴 만큼 수요도 견고하다.
반면 중국 시장에서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38만6000대)보다 14% 줄어든 33만2000대(현대차 23만9000대+기아 9만3000대)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은 현대차 2.1%, 기아 0.8%로 합쳐도 3%가 채 안 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4.1%)보다 1.2%포인트(p) 낮아진 수치다. 2012년 현대차그룹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10%였던 것을 고려하면 급락한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중국 시장 온도 차는 외부 변수에서 시작됐다. 2016년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서 현대차와 기아도 타격을 입었다. 실제 사드 배치 전인 2015년 현대차와 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8.2%였지만, 2017년에는 5.1%로 낮아졌다.
여기에 현지 시장 분위기도 작용했다. 중국의 경우 현지 업체들이 소비자 입맛에 고려한 차량을 싼 가격에 대거 선보이면서 현대차와 기아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다른 수입 브랜드들이 고급 모델을 출시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판단이 늦어지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됐다.
또 현지 수요가 높은 SUV 등 신차 출시가 늦어진 것도 현대차와 기아의 중국 시장 부진의 한 원인이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글로벌 시장에 비해 소극적인 태도와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현대차와 기아의 부진 원인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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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루라이드는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 기관 켈리블루북(Kelly Blue Book)이 발표한 ‘2020 베스트바이어워드(2020 Best Buy Awards)’에서 ‘베스트 뉴 모델’과 ‘3열 미드사이즈 SUV’ 부문 수상 차량으로 선정됐다. 또 미국 유명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Car and Driver)가 발표한 ‘2020 10베스트’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세계 최고 자동차 전문지로 꼽히는 미국 모터트렌드가 발표한 ‘2020년 올해의 SUV (MotorTrend’s 2020 SUV of the Year award)’에 텔루라이드가 최종 선정됐다. /뉴스1 |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큰 외부 변수가 없었고, 텔루라이드와 싼타크루즈 등 현지에서 원하는 차량을 지속해서 선보이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제이디파워(J.D. Power)사가 발표한 ‘2021년 신차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 2위에 오르는 등 잇단 수상도 현대차와 기아 브랜드 가치 상승에 힘을 보탰다.
특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제네시스 GV80을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도 목숨을 건지면서 안전성이 부각됐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충돌 평가에서는 ‘최고 안전한 차’로 선정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며 판매가 늘었지만,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에 밀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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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중국 상하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1 상하이 국제 모터쇼’에 아이오닉5와 투싼L을 전시했다. /뉴스1 |
다만 현대차와 기아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 공장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고, 중국 시장 없이 글로벌 판매 확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본사의 직접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친환경차로 재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 7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 증가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2030년까지 총 21개의 전동화 라인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선보이며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는 현대차와 기아의 중국 판매가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내놓는다고 다 팔리는 것은 아니다”며 “경쟁이 치열한 만큼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는 차량을 내놔야 승산이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