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로 보낼 계약 물량은 이미 선적했는데, 대금 회수가 안 되고 있어 막막한 상황입니다.”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버틸 체력이라도 있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관건은 제재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길어지고 강도가 강해질수록 현지에서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접수된 기업들의 애로 사항은 모두 188개사, 257건에 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금결제다. 전체 애로사항의 57.5%인 146건이 대금 결제 문제를 호소했다. 물류와 정보부족은 각각 79건(31.1%), 16건(6.3%)에 달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 제재로 현지 은행들이 전 세계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서 자금 거래가 막힌 것이 원인이다. 러시아 발주기업(바이어)이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있더라도 스위프트에 배제된 7개 은행을 통해 거래해왔다면 달러 결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러시아 거래기업들이 대금결제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루블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1달러당 75루블 수준이었지만 이달 초에는 110루블을 웃돌았다. 루블화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9.5%에서 20%로 인상했다.
달러로 거래하게 되면 러시아 바이어 입장에서는 환차손 피해가 커진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협에 따르면 바이어의 대금 회수 불가, 주문 생산 제품의 인수거부, 러시아 루블화 환율상승으로 대금 지급 거부 등의 사례가 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은 아직까지 충격이 덜하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16개 그룹이 러시아에서 53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에 TV 공장을, LG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루자에서 TV와 생활가전 공장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이 있다.
대기업 대부분은 글로벌 금융기관과 거래해 스위프트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다. 또 현지 법인에서 한국으로 자금을 급히 송금해야 할 만큼 급박하지 않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현지 부품 업체와도 루블화를 통해 거래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현지에서 국내 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A사 대표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전쟁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며 “기존처럼 루블화를 통해 거래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제재가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경제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부품 조달 등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금융 제재에 관한 측면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이 전부”라며 “제재가 장기화하면 피해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현지 상황에 맞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도 “제재가 길어질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맞다”고 언급했다.






